뜨거웠던 운동장 위, 그리고 서른둘의 선택
나의 20대는 경기장의 조명과 땀 냄새로 가득 찼다. 체대를 졸업하고 꿈꾸던 선수 트레이너(AT)가 되었을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부상을 케어하고, 그 선수가 다시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볼 때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약 같았다.
나는 욕심이 많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존경받고 싶었다. "선생님 덕분이에요."라는 그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들어오는 프리랜서 일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현장으로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선수들의 근육을 풀었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 그만큼 나의 가치가 증명되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유능하고 에너지 넘치는 전문가였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혼자 남는 밤이면, 나는 늘 불안이라는 불청객과 마주해야 했다. 프리랜서의 삶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내 땀방울의 무게보다 가벼웠다. 쉴 새 없이 달렸지만, 통장 잔고는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다. 일을 멈추는 순간 수익도, 나의 존재 가치도 멈출 것 같다는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새로운 기회는 달콤한 사탕처럼 계속 찾아왔지만, 그것은 내 미래를 단단하게 다져주는 벽돌이 되지는 못했다.
“이렇게 10년을 더 달리면, 나는 무엇이 남을까?”
화려한 경력은 남겠지만, 정작 내 손에 쥐어진 '안정'은 한 줌도 되지 않을 거라는 서늘한 예감이 들었다.
더욱이 내 몸은 너무나 정직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20대 때는 밤을 새우고도 쌩쌩했지만, 30대에 접어들자 회복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운동을 하고, 체력을 유지하려고 노렸했지만, 힘을 쓰는 테크닉이나 격렬한 현장 스케줄을 소화할 때마다, 남성 트레이너들과의 체력적 차이를 실감하며 남몰래 한숨을 삼켜야 했다.
결정적으로 '미래의 나'를 떠올렸을 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는 삶. 그 평범한 행복을 누리기에, 불규칙한 출장과 밤낮 없는 현장은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개인적으로, 내 삶의 다음 챕터(결혼, 출산, 육아)와 병행하기엔, 지금의 내가 가진 직업은 너무나 위태로웠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 한편에 미루어두었던 숙제를 꺼내 들었다. 바로 '물리치료학과' 진학이었다. 불안정한 프리랜서 생활을 지탱해 줄 단단한 기둥, 바로 '면허'가 필요했다.
기회만 쫓느라, 당장의 인정에 목마르느라 외면했던 현실을 직시했다. 돈을 못 모은 것도, 미래가 불안한 것도 결국 내가 선택한 결과였다. 이제는 그 불안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선수 트레이너로서의 경험 위에, 내 삶을 확장시켜 줄 물리치료사라는 갑옷을 덧입으러 가는 것이다. 밑 빠진 독을 깨뜨리고, 이제는 물이 차오르는 단단한 그릇을 빚기 위해. 나는 기꺼이 32살의 1학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