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 다시 1학년입니다

'생존'을 위한 공부에서,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by 지달이

정답만 찾던 지난날, 질문을 던지는 오늘


트레이너 시절의 공부는 전쟁이었다. 당장 내일 경기에 나갈 선수의 통증을 잡아야 했기에, 원리를 파고들 시간보다 즉각적인 '해결책(Solution)'이 급했다. "이럴 땐 테이핑 이렇게, 저럴 땐 마사지 저렇게." 그것은 깊은 이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암기였고, 테크닉의 나열이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학문'을 마주했다.

"왜 여기서 통증이 시작되는가?", "신경은 어떤 경로로 근육을 지배하는가?"

쫓기듯 해치우는 공부가 아니라, 인체의 신비를 바닥부터 천천히 쌓아 올리는 과정. 32살에 다시 펴든 전공책은 더 이상 지루한 활자가 아니었다. 내가 현장에서 수없이 만졌던 선수들의 몸, 그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현상들에 대한 해답지였다.


나의 20대는 헛되지 않았다


동기들이 해부학 그림을 보며 "이게 도대체 어디 붙어있는 거야?"라고 머리를 쥐어뜯을 때, 나는 책 속의 그림이 3D로 튀어나오는 듯한 경험을 한다.


과거에 손끝으로 익혔던 감각들이 이론과 딱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그것은 20살 동기들은 절대 느낄 수 없는, 오직 '경력직 신입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체대에서 배웠던 기초, 현장에서 흘렸던 땀,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거름이 되어 지금의 공부를 돕고 있었다. 내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시간이, 사실은 가장 탄탄한 기초공사였음을 성적표의 'A+'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동기들 사이에서 '전공 킬러'로 통한다. 시험 기간이면 내 자리는 작은 스터디 그룹이 된다. 단순히 암기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와, 누나 설명 들으니까 이해가 확 돼요!"


그저 글자로만 존재하던 지식에 내 경험을 입혀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 동기들의 공부를 도와주면서 나는 확인한다. 내가 헛살지 않았음을. 그리고 내가 배우고 있는 이 학문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천천히, 그러나 깊게 뿌리내리는 중


누군가는 늦었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식물도 빨리 자라면 줄기가 연하고, 천천히 자라야 목질이 단단해진다.


20대의 내가 빨리 열매를 맺고 싶어 안달 난 연한 줄기였다면, 32살의 나는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는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배우는 이 학문은 당장의 밥벌이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앞으로 내가 평생 다루게 될 사람의 몸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전공 A+라는 결과보다 더 기쁜 건, 어제보다 오늘 더 깊이 알게 되었다는 충만함이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공부가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