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은 1월 29일이다. 82년 1월 29일의 달력을 찾아보면 금요일인데, 뭔가 분주하고 바쁜 금요일 아침에 우리 엄마는 1950년생으로 32살의 나이에 나를 낳으러 병원이 아닌 모자 보건센터에 버스를 타고 가셨다. 가난한 집의 둘째 딸의 운명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첫말 “어찌 된 거야?” 로 시작된다.
엄마는 나의 언니를 낳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임신 4개월에 속이 불편함을 느끼고 나를 임신한 것을 직감하셨고 가난한 살림이었기에 아기를 낳기 위해서 아빠에게 “아들인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아들은 딸로 태어났고, 홀대 아닌 홀대를 받게 된다. 그러나 모두 사람은 자기의 귀여움을 가지고 태어나며, 둘째의 숙명처럼 사랑받기 위한 몸부림과 살아남기 위한 운명처럼 아들 같은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된다.
언니보다는 공부를 잘해서 우리 가족을 일으킬 아이, 효도를 잘할 아이로 이름 안에 “효도 효”자를 넣으시고 정말 부담을 많이 주셨다.(참 나쁘다..) 내가 100점을 받아와도 당연한 일, 90점을 받아오면 더 질타를, 80점을 받아오면 맞아야 할 일처럼, 본인은 백수로 살면서 자식과 아내에게 많은 것을 평생 바라며 산 아버지를 생각하니 답답함과 쓴 뿌리가 몰려온다.
그렇지만 없는 살림에도 나를 좋아한 엄마는 생일에는 늘 미역국과 찰밥, 잡채를 만들어주시고 용돈도 주셨다. 나는 우리 엄마가 참 좋은데 그 엄마와 오늘은 건강검진을 다녀왔다. 이제는 75세의 나이로, 복잡한 병원에서 내과, 채혈실, 산부인과와 수많은 초음파와 검사를 하기에는 부족해서 나에게 1년 동안이나 “언제 건강검진 갈 거니?”를 물으시고 고 드디어 오늘 12월 2일에 함께 가게 되었다.
엄마의 허둥지둥한 모습, 생년월일을 묻는 질문에 반응이 느린 모습, 의사 앞에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모습들이 거짓말 같았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드시고 총기가 사라지셨을까… 이제는 내가 엄마의 엄마의 몫을 해야 하기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든다. 역시 글쓰기는 최고의 생각정리 tool이다.
엄마와 내가 모두 건강해서 함께 생일이 맞는 해가 딱 20년은 더 있었으면 좋겠다. 건강검진을 같이 가는 해도 딱 스무 번은 더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의 최고의 자랑인 “아들 같은 혹은 아들보다 더 멋진 딸”로 평생 엄마의 곁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드는 철든 것 같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