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으로 죽고 싶은가.
<황보람의 저니 (영원한 퇴사)>를 읽고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떠한 직업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되고 싶은 건 없었다. 한 단어로 정의되는 무언가는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떠오른 단어, ‘나’.
나는 (나)로 죽고 싶다.
매일 같이 마주하는 나이지만, 나는 늘 내가 가장 어렵다. 나의 본능을 충실히 따라가며 사는 것 같다가도,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는 순간들도 찾아온다. 어느 날의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가도, 어느 날의 나는 처음 들어간 직장을 15년 이상 다니고 있는 성실한 영혼이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날이 후자이다.)
이 간극을 넘나들 수 있게 하는 것이 여행이다. 일 년 중 성실하게 220여 일 동안 일을 하면 주어지는 20여 일의 휴가. 그렇게 얻어낸 휴가에 떠난 여행지에서 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한결같은 내 모습을 보며 안도하기도 한다.
2006년 처음으로 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여행이 내 삶에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생활 중 처음 떠난 해외여행 일정은 90일이었고, 목적지는 유럽이었으며, 혼자였다. 그렇게 배낭 없는 배낭여행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인 그때, 처음 한국을 떠나면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홀린 듯이 계획을 세웠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넌 이걸 가장 좋아하게 될 거야”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계기는 프랑스어였다.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배운 프랑스어가 흥미로웠기에, 대학교 필수교양으로도 프랑스어를 택했다. 그때 교수님이 프랑스 발레 공연을 추천하셔서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와 보러 갔다. 우아했으나 재미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프랑스어는 좋았기에 다음 목표를 정했다.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팀 공연. 조금은 시큰둥한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뮤지컬이 끝났을 때 마음속에는 한 가지 문장만이 남아 있었다.
‘프랑스에, 파리에 가자.’
말 그대로 문화충격. 이런 뮤지컬을 만들 수 있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궁금했다. 내 두 눈으로 보고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언어에 대한 관심이 문화로, 문화에서 국가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알바를 하며 모아둔 돈을 탈탈 털고, 경비를 아낄 겸 외국인 친구들도 만들어 볼 겸, 2~3주 동안 숙소와 기본 식사가 지원되는 국제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여행 사이에 세 개 넣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90일간의 유럽일주.
그 이후로 시간과 돈이 닿는 대로 여행을 다니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첫 여행의 황홀함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체력도.
국내외로 여행을 다니면서 나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 반문한다.
여행 중에는 내가 ‘있고 싶은 장소’에서 ‘온전히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하루를 구성하기에, ‘어쩌다 정착한 장소’에서 여러 가지 ‘해야 할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에서의 나보다, ‘진짜 나’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여기서 해야 할 것이란 출근 같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활동까지 포함된다. 집에서 보내는 주말에도 책을 읽으려고 하면 갑자기 정리할 곳이 보이고, 주문해야 할 생필품이 떠올라 흐름이 자주 끊긴다. (사실 이건 도둑맞은 집중력 탓이기도 하다.)
집을 벗어나 여행을 가면 바쁘게 돌아다니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하루 종일 카페를 전전하며 책을 읽는 날도 있는데, 그럴 때면 내가 왜 돈을 들여서 온 여행 중에 책만 읽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곳엔 회사도, 아는 사람도,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설거지도 없기에 무엇을 하건 그 순간에 집중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읽은 책이나 경험한 것은 그 장소와 결합하여 좀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의무감을 내려놓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여행을 채워가면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든든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그렇게 발견한 조각들을 이어 붙여가며 내가 무엇을 할 때 반짝이는지 찾아가는 것을 반복한다. 죽을 때 ‘진정한 나’로 죽기 위해서는 이 탐구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언젠가 오랜만에 물리적으로 추억상자를 열어 낭만이 있던 시절의 편지와 크리스마스 카드와 교환일기장을 꺼내어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학창 시절에는 ‘교환일기’를 쓰는 것이 유행, 아니 그 시절을 버텨내게 해주는 우리만의 문화였는데, 고3 시절 어느 두 친구들과 셋이서 썼던 교환일기 중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그럼 나는 ‘승객’ 할래."
한 친구의 꿈은 파일럿이었고, 다른 친구의 꿈은 승무원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에는 인디아나 존스를 보며 고고학자이자 탐험가를 꿈꿨고, 중학생 시절에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인물의 눈코입의 조화를 도무지 맞출 수가 없어 마음을 접었다. 그 이후로 진정으로 되고 싶은 것이 없었던 나는 그 친구들의 꿈을 보며 해맑게 승객으로 함께 하겠다고 썼던 것이다.
첫 여행을 준비할 때 “넌 이걸 가장 좋아하게 될 거야.”라고 속삭이던 건, 그 시절의 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한결 같이 되고 싶은 게 없구나.
언제까지 나에게 여행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구는 둥그니까. 계속 걸어 나가다 보면 온 세상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겠지. 그렇게 돌아온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게 나’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여기가 아닌 먼 곳을, 때로는 아직 가보지 않은 수많은 곳들을 헤아리며 나를 사로잡는 다음 단서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