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딴 곳에서

1. 0000년 0월

내가 쓴 일기를 내가 엿보기

by 지예강

농사꾼이 밤에 시를 지으면 그 시는 농사꾼의 낮도 바꿔놓을 수 있을까? 일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밤의 시간은 무엇일까? 먹고 자고 쉬는 것 말고 우리도 잠의 시간에 뭔가 한다면 그것이 또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정혜윤 『여행, 혹은 여행처럼』


매일 밤 일기를 썼다. 술에 취해서 다음 날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괴발개발 쓸지언정 하루의 마무리는 일기를 쓰는 것. 물론 펜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취했거나, 그만큼 몸이 아프거나, 또 그만큼 마음이 아프거나 할 때엔 가끔 빼먹기도 했지만, 그래도 거의 매일.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내가 보낸 하루를 명문화시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그렇게 일기 쓰는 것에 집착한 걸까? 글쎄,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고 싶었기에 일기를 썼다는 게 좀 더 들어맞는 표현인 것 같다. 내 행동과 생각과 감정이 여과 없이, 눈치 볼 것 없이, 아주 솔직하게, 날 것으로, 정제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배설되는 순간이 - 바로 일기를 쓰는 순간이다. 난 내 행동과 생각과 감정이 타인의 기준과 시선에 심하게 속박된 사람이다. 자아를 확립하고 ‘나’라는 사람을 규정짓는 데 있어서 타인의 역할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잣대는 지대했다. 그래, 어쩌면 일기 속의 나도 완벽하게 솔직한 나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김중혁의 『무엇이든 쓰게 된다』의 한 구절.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던 글쓰기는 점점 누군가를 의식하게 된다. 일기조차도 그렇다. … ‘나를 바라보는 나’가 존재하는 순간, 누군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일맥상통하진 않겠지만 ‘나를 바라보는 나’에게 ‘내’가 느끼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피하고자 난 굳이 지난 일기를 펼쳐보지 않았다. 내 행동과 생각과 감정을 와락 토해내고는 바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지난밤 토해놓은 페이지는 의식적으로 넘겨버리고서 바로 다음 장에 오늘의 구토를 하는 거다. 그렇게 쌓여간 토사물만 몇십 권.


그러다가 갑자기 왜 지난 구토의 현장을 다시 들춰볼 결심을 했냐면, 그건 잘 모르겠다. 매일 밤 잠을 잠시 미뤄두고 가만히 끄적였던 그 시간들이 그리 무의미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어쩌면 그렇게 끄적여 놓은 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진 않았나 하는 생각도. 그리고 제법 용기도 생겼다. ‘나를 바라보는 나’를 ‘나’와는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생각한다면, 어쩌면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아닌 조금 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왜, 내가 쓴 일기장을 보는 것과 남이 쓴 일기장을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후자의 스릴과 재미를 느껴보고 싶었다. 아니면 측은지심이라도.


차근차근히 지난 일기장을 읽으면서, 특별히 여기 아닌 다른 곳에서의 몇 가지 기억을 추려볼까 한다. 20대부터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모두들 입을 모아서 ‘청춘’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시기에 난 참 많은 곳을 다녔다. 도피를 위해서, 성장을 위해서, 뭐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지구 곳곳을 헤맸지만, 그 밑바탕에 깔려 있던 변명은 언젠가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여행의 경험이 인생의 혜안으로 이어지고 그게 곧 글감이 되리라는 억지스러운 믿음. 물론 인생의 혜안은 여전히 내게 없고, 나만의 철학이나 사상은커녕 남의 철학이나 사상조차 지레 의심하고 보는 못난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이 지금 내가 뭐라도 쓸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긴 한 것 같다. 그리고 일기장을 뒤적이다 발견한, 스페인에서 귀국하는 길에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서 읽었던 <작가란 무엇인가>의 헤밍웨이 편에서 옮겨 써 놓은 다음의 구절: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글쓰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집을 나가서 목을 매야 합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목매는 밧줄에서 끌어 내려져야 하고, 죽을 각오로 남은 삶 동안 최선을 다해 쓰도록 스스로 강요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최소한 목매는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겠지요.”


물론 글쓰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그 사실로 오랫동안 쓰지 못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절대 목맬 생각이 없으며 남은 삶 동안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해서 쓸 수도 없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그만큼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그래도 시작 가능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만큼 절실하지는 않더라도 약간 모자라고 빈 상태를 인정하고, 조금 덜 최선을 다해 쓸 수 있는 능력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100개의 에피소드만 써보자 싶다. 100개가 있을 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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