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처럼 종일 잤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니 밤 9시였다. 일단 배가 고파서 샐러드를 만들고 삼치구이를 데우고 현미밥을 퍼담은 뒤 꺼끌꺼끌한 입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 30주년 특집 방송 '그래도 음악이 있다'를 봤다. 보고 났더니 어느새 날짜가 바뀌어 있더라. 배철수 아저씨가 차례차례 소개한 아티스트들의 노래와 연주를 듣고 있자니 괜히 침통한 기분이었다. 팬데믹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자신만의 작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부지런히 영감을 받고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쓰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손가락을 유연하게 훈련시키고 있었다. 난 마냥 게으른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새 크리스마스 연휴 마지막 날을 난데없이 맞이한 터였다.
크리스마스 연휴 직전에 2020년의 모든 프로젝트가 끝났다. 이브에는 혼자서 나름의 종무식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그러나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새 프로젝트 의뢰 전화를 받았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업무 전화를 하는 사람의 센스에 깜짝 놀랄 지경이었지만, 몇 번 투덜거리고 말았다. 어쨌든 계획의 명분에서 종무식은 빠지게 되었다. 영화와 공연 몇 편을 찾아보고 두꺼운 책을 조금씩 나눠 읽고 방어회와 연어회를 한 접시씩 먹는 것으로 2020 크리스마스는 끝. 연휴 마지막 날은 별 수 없이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의 침통한 기분은 어쩌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아니면 돈을 받고 하는 글쓰기든 돈을 받지 않고 하는 글쓰기든 주저 많은 내 모습 때문인가. 괜히 아까 특집 방송에 나온 아티스트의 음악을 찾아 듣고 있다. 적정 수면 시간을 훨씬 넘긴 지금의 내가 책상 앞에 몇 시간 앉아 있어야 할 내일의 나를 위해 언제쯤 다시 이불속에 들어가는 게 좋을지 가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