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얼마에 팔 것인가

by 지예강

프리랜서로 8년 차다. 매달 크고 작은 부침을 겪긴 했지만, 1년 단위로 보면 고만고만한 살림살이를 운용할 정도의 벌이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이 호황기였고, 바로 직전 연도인 2025년이 최대 불황기였다. 아래로 꺾인 그래프에 변곡점을 찍으려면 일감을 부단히 더 물어와야 하는데.

주로 누군가의 소개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지만 때로는 직접 구직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업데이트가 오래전에 멈춰버린 포트폴리오 파일을 폴더 깊숙한 곳에서 겨우 끄집어 내 먼지를 털고 손볼 데를 손본다. 그동안 나름 열일한 것 같은데 포트폴리오에 넣기엔 마땅찮은 결과물뿐이다. 그래도 분칠하고 단장해서 진열대에 넣어 구색을 갖춰본다. 직장인에게만큼 프리랜서에게도 공백기간에 대한 질문은 난감하기 때문이다. 느슨하게 일했어도 놀지는 않았단 걸 증명해야 한다. 나, 쉬었음 인구 아니에요.

포트폴리오를 기꺼이 던질만한 일거리를 찾기 위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 본다. 새벽 4시 인력시장을 어슬렁거리는 뜨내기 일꾼처럼 모니터 속 페이지를 드르륵 스크롤하고 가끔 게시글을 클릭한다. 내가 불황이라는 건 곧 이 바닥 생태계도 불황이라는 뜻이지만, 요새 좀 심하긴 하다. 겨우 찾은 구인글 하나. 근데 요구하는 노동력에 비해 작업료가 형편없다. 등가교환 모르시나. 가치 판단이 안 되는 사람이 나를 부리게 할 수는 없지.

잠시 후 또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나를 공짜로 써 달라'는 어리둥절한 게시글을 봤다. 열정 페이도 아니고 무보수로 성심성의껏 일하며 실무 경험을 쌓겠다는 거다. (이 단어 쓰는 거 내키지 않지만) 젠지 세대답지 않은 고릿적 태도다. 요새도 이런 청년이 있는가? 이렇게 시대를 역행하고 노동자 인권을 후퇴시키는 어리석은 청년이. 물론 본인도 나름의 뜻이 있겠고, 또 요즘 세태가 경력 있는 신입, 즉 (이 단어 쓰는 거 역시 내키지 않지만) 중고신입을 선호한다지만.

불안감은 잔병치레하듯 자주 찾아오고, 그런 날 밤은 몸살 기운에 미열을 앓듯 은근히 잠자리를 뒤척이게 만든다. 아까 딱 하나 본 구인글을 떠올린다. 불공정거래가 동아줄로 느껴진다. 지금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한 푼이 아쉬운 거 아니야? 밥줄 끊기고 후회하면 소용없다?

다음 날. 공짜로 나를 팔겠다는 청년의 글에는 걱정과 비난의 댓글이 가득 달렸다. 헐값에 작업자를 사겠다는 글에는 떡하니 구인완료 딱지가 붙었다. 그리고 무보수는커녕 비수기 할인가에도 내 쓰임을 내어주기 싫은 나는 오늘 밤도 잔병치레를 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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