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상 일을 의뢰하는 회사가 갑, 의뢰받아 일을 하는 프리랜서가 을일 수밖에 없지만 그게 상하위계를 뜻한다고 생각진 않는다. 그보단 공통의 프로젝트를 함께 완성해 나가는 파트너에 가깝다. 일자리 매칭 플랫폼이나 헤드헌터나 지인 소개 등 여러 루트로 처음 협업을 하게 된 회사와 프리랜서는 일단은 일회성 관계더라도 서로에게 깍듯하게 예를 차린다. 프리랜서의 입장에서는 첫인상을 잘 남겨서 지속적으로 일감을 받고자 하는 욕심이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이 작업자가 맡은 과업을 잘 수행함으로써 회사에 적절한 이윤을 챙겨주길 원한다. 그렇게 한두 번 손발을 맞춰본(간을 본)다. 이 작업자, 양아치는 아니네. 퀄리티 괜찮고, 마감도 잘 지키고, 전화도 재깍재깍 받고, 찡찡거리지 않네. 이 회사, 쓰레기는 아니네. 업무 스코프 명확하게 하고, 무리한 요구도 안 하고, 작업료 후려치지도 않고, 입금도 약속한 날짜에 해주네. … 이렇게 서로에게 결격 사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계약은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때부터는 이 회사니까 일을 받는 거고, 이 사람이니까 믿고 맡기는 거다. 다른 파트너를 찾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케미는커녕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기조차 힘들고, 그보다는 … 좀 귀찮다.
물론 둘의 관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느슨해질 수 있다.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지. 처음에는 "이 붕어빵 얼마에 파시겠어요? 아, 세 개 2000원이요? 그렇게 하시죠."였다가, "이번에는 1500원에 어떻게 안 될까요? 지갑 사정이 넉넉지 못해서요. 부탁드립니다."였다가, 이제는 "1000원에 합시다. 저 단골이잖아요."란다. 붕어빵 아저씨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단골이라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조건 찾아오는 손님도 아니면서 생색은. 그렇다고 단칼에 거절할 처지도 아니다. 거리는 오가는 사람 없이 휑하고, 포차 한편에 쌓인 재고가 눈에 밟히는 데다, 붕어빵은 이제 한 블록마다 하나씩 입점해 있는 편의점에서도 절찬리 판매 중이다. 1000원이라니 남는 것도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면, "다음에는 잘 쳐드릴게요."라며 실속 없는 약속을 한다.
붕어빵은 시장의 논리로 암암리에 형성된 가격 적정선이라도 있지. 원가 책정이 어려운 창작물의 가치는 방어선이랄 게 없다. 서로의 입장을 우기다가 점점을 찾으면 그때 거래가 성사되는 거다. 그리고 대부분 한쪽이 밑지는 기분이다.
내일모레 찾으러 올 테니 맛있게 구워놓으라며 떠난 손님. 아무리 내가 급하면 밤낮이고 주말 없이 불 앞에서 철판을 돌리는 신세라지만, 꼭 금요일 밤에 와서 월요일 아침 픽업을 예고하는 손님의 그 심보도 궁금하다. 그렇다. 난 면전에서는 뭐라고 못 하고, 부루퉁한 얼굴로 밀가루 반죽을 개며 혼잣말로 뒷담화 중이다. 1000원 받는다고 팥소를 덜 넣는다거나 반죽물을 제대로 안 익힌다거나 속에 와사비를 넣고 구울 수는 없어서 억울하고 원통하다. 그건 장사 망하는 지름길이고, 붕어빵 외길 인생 자존심에도 허락지 않는다. 다음에 1500원 이하로는 절대 안 판다 결심하며, 아니, 2500원을 불러도 안 사 먹을 수 없게끔 맛으로 설득하리라 다짐하며, 반죽을 치대는 전완근에 힘을 준다. 흥. 이번엔 서비스로 나가는 땅콩과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