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짤막하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예강 Nov 29. 2020

049. 귀엽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혀끝에 배인 말버릇이 있기 마련이라 기침을 하거나 하품을 하듯 자각 없이 툭툭 내뱉는 말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입에 붙지 않아 거의 사어와도 같은 말이 있다. "귀엽다"는 내게 후자에 속하는 말이었다. 오늘, 무심히 유튜브 브이로그를 켜놓고 점심을 먹을 때였다. 브이로거의  어떤 행동에 나도 모르게 밥을 우물거리며 "귀여워!"라고 혼잣말하는 생경한 내 모습을 자각하고는 잠시 놀랐다. 그리고 곧이어 내가 요새 "귀엽다"라는 형용사를 감탄사처럼 자주 쓴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번 더 놀랐다. 정말 그랬다. 놀이터에서 왁자지껄 노는 아이들을 볼 때도, 등굣길 지하철에서 곤히 잠든 학생을 볼 때도, TV 속 연예인의 어리바리한 행동을 볼 때도, 친절하고 밝은 카페 직원을 볼 때도, 느릿느릿 산책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볼 때도, 인기척에 후다닥 몸을 숨기는 길고양이를 볼 때도, 그날 있었던 일을 전화로 종알종알 전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불현듯 떠오른 어떤 날의 흐뭇한 기억에도 "귀엽다"라고 중얼거리는 거다. 그런데 그게 아무 생각이나 감정 없이 무조건반사처럼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귀엽게 느껴져서 진정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 사실 역치가 높았는지 감각이 무뎠는지 모르겠지만 남들이 귀엽다고 느끼는 것에 무심했긴 했다. 예를 들면, 갓난아이는 '작다'. 그래서 혹시 나 때문에 다칠까 봐 피했다. 강아지는 '무섭다'. 그래서 강아지 때문에 다칠까 봐 피했다. (지금은 소동물들을 대하는 방법을 몰라서 선뜻 다가가지 못할 뿐 피하지는 않는다.) 인형은 '필요 없다'. 그래서 물리적 심리적 퍼스널 스페이스에 두지 않는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친척들로부터 받은 인형 선물을 몰래 하나씩 창밖으로 버린 일화는 우리 집에서 유명하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있어도 '귀여움'은 없었는데 무슨 일인가. 30년 훨씬 넘게 귀여움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는데 어찌 된 일인가. 갑자기 왜 세상에 귀여운 사람, 귀여운 상황, 귀여운 모양새가 많아진 건가. 득음하듯이 귀여움도 갑자기 체득되기도 하는 그런 건가. 아니면 나이를 방만하게 먹으면 세상만사가 시시해져 웬만하면 큐트하게 느껴지는 건가. 뭔가.


귀엽다 [귀:엽따] 형용사 

예쁘고 곱거나 또는 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


뭐, 좋은 의미니까 굳이 삼키지는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048. 1월 아닌 11월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