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 책 한 권을 들고나가 천변 벤치에서 읽었다. 여행이 금지된 시기에 읽는 여행 에세이는 역(逆) 노스탤지어를 일으켰다. 내 마지막 해외여행은 몇 년 전. 귀국 편 비행기 안에서 당분간은 국경을 넘을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여정이 힘들었다거나 특별히 나쁜 일을 겪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이국의 매일이 뻔했고 그래서 진절머리 났다. 여행지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였다. 어디에 있든 난 암담했을 터. 그 뒤 내 여가시간은 밖보다는 방으로 향했고 그게 제법 만족스러웠다. 가끔 콧바람이 쐬고 싶으면 국내의 어딘가를 찾았다. 정말 국경을 넘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넘을 수도 없다. 그런데,
조금씩 내 마음이 동한다는 것. 다시 가고 싶은 나라가 있는데 갈 길이 요원하다. 얄궂다. 어쩔 수 없지. 대신 중단했던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 나라에서의 기억이 너무 행복해서 여행을 다녀온 뒤 한참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익혔었다. 그리고 그 언어를 쓰는 또 다른 나라로 떠나기도 했었다. 기껏 알고 있던 것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돌아온 뒤 괜히 분한 마음에 더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그랬는데... 과거형을 현재형으로 바꾸자. 다시 누구나 여행을 기꺼이 누릴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물론 몇 년이 걸리겠지만,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 나라 말을 부지런히 듣고 쓰고 말해보자. 그래서 여행이 가능할 때까지의 시간과 항공 티켓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과 대륙과 바다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을 모두 견디고 끝끝내 그 땅에 다다르면, 일단 광장으로 달려갈 거다. 그리고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홀짝이다가 슬쩍 옆 자리 현지인에게 말 걸어야지. '난 이곳 가로수가 오렌지인 게 참 마음에 들어요. 성당 안에 오렌지 정원은 어떻고요. 근데 여기 떨어진 오렌지를 주워서 먹어도 되나요?', '혹시 이 밴드를 아나요? 듣자마자 보컬 목소리에 푹 빠졌지 뭐예요. 이곳 현지에서 이들의 공연을 보는 게 내 작은 소원 중 하나예요.', '외국인들은 잘 모르는 훌륭한 작가의 대표작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쓰는 단어가 쉽고 문체가 간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뭐 이런 말들을 주워섬기면서.
1월 아닌 11월에 하는 공부 다짐. (실패하면 1월에 다시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