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노의 도박사>
<리노의 도박사>
1996
폴 토마스 앤더슨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리노의 도박사>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중에서 러닝 타임이 짧은 편인, 깔끔하게 보기 좋은 영화였습니다. 서사는 명확합니다. 모든 돈을 잃어 어머니의 장례식마저 치루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한 젊은 남자에게 깔끔한 차림의 노신사가 다가옵니다. 노신사는 돈을 벌도록 도와주겠다는 손길을 내밉니다. 남자는 처음에는 의심하지만 이내 마음을 열고 노신사의 말대로 합니다. 덕분에 잘 곳도, 입을 옷도 생긴 그는 노신사를 스승처럼, 아버지처럼 따릅니다.
노신사는 어떤 악의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그저 당신도 나중에 나를 도왔으면 좋겠다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이유만을 제시합니다. 노신사가 젊은 남자를 아들처럼 보살펴 준 것처럼 딸처럼 챙겨주는 젊은 여자도 있습니다. 여자는 노신사를 ‘캡틴’이라 부르며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아들 같고, 딸 같은 두 젊은이를 노신사는 이어줍니다. 이야기가 이렇게 순조롭게만 흘러가면 참 마음이 따뜻하고 지루한 영화가 되었겠지만 사건이 터집니다. 두 젊은이들은 사고를 치고, 노신사는 그것을 수습해줍니다. 잘 마무리가 되었나 싶을 즈음, 마지막으로 하나의 사건이 더 벌어집니다. 노신사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음, 과연 잘 마무리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도박영화보다는 가족영화에 가깝습니다. 가족영화 중에서도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적 탐구를 하는 영화라고 보았습니다. 감독의 대답은 비관적입니다. 먼저 인생에서 실패해본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도우려하지만, 결국 아버지든 아들이든 자신의 과거에 얽매여 불행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의 출신이든, 저지른 악행이든, 불운한 경험이든 과거의 불행에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세 인물 시드니와 존, 클레멘타인이 가진 공통점은, 자신의 과거(그 과거의 기간은 상이하지만,)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시드니는 존의 아버지를 죽이고, 책임지고 속죄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존의 친구인 지미를 또 다시 죽이게 됩니다. 존은 멍청한 생각과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시련이 닥쳤을 때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절망에만 빠져있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합니다. 클레멘타인은 자신의 성을 상품화하는 시선을 내재화해서 스스로 그렇게 행동하고, 존과 결혼을 했는데도 돈을 벌기 위해 매춘을 합니다.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며 좋지 않은 행동을 반복하는 겁니다.
시드니는 나머지 둘과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그는 적어도 자기의 중심은 잡혀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굴레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일 겁니다. 젊은 시절을 벗어나면 더 이상 멍청한 행동은 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행동이 자신을 구속하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미래의 감옥에 갇혀서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만을 할 뿐입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속이 썩어갈 것입니다. 존과 클레멘타인이 벌인 이번 일은 얼렁뚱땅 운좋게 잘 넘어간 듯 보이지만, 그건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며, 아니면 또 다른 멍청한 짓을 해서 자신의 신세를 망쳐 놓을 겁니다. 아버지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놓지 못하고 속상하고 걱정하겠지요. 가족이라는 것의 어두운 면모는 이런 게 아닐까요. 자기 자신에게서 속박당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며 같이 고통받는 것입니다. 아랫세대에게는 조금만이라도 더 나은 삶을 주려고 애쓰는 부모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영화는 도박과 매춘, 납치, 협박, 돈, 살인 등 어둠을 다루고 있습니다. 화려한 도박의 도시 리노에서 서로의 죄짓기로 이어진 유사가족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또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도 만듭니다. 우리도 똑같이 자기 스스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지켜볼 부모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잠깐이나마 함께 겪어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