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2001
조엘 코엔, 에단 코엔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코엔 형제의 영화 중에서 웃음기가 가장 덜 들어있는 영화였습니다. 흑백이라는 형식부터 그렇고, 말 수가 거의 없고 담배만 줄곧 펴대는 주인공의 조용함까지 영화는 전체적으로 미니멀한 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의 아이러니, 불가항력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의 범죄에 대한 처벌은 미루고 미루어 지다가 결국은 다른 식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단 한 번의 잘못된 내디딤으로 시작되어 우주의 쓰레기가 되어버린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 소설 ‘웨이크필드’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상당히 미국적이며, 실존주의적 고민을 진지하면서도 코믹스럽게, ‘코엔’스럽게 다룬 수작입니다.
이발소 앞 매일 똑같이 일정하게 돌아가는 싸인볼처럼 에드의 삶은 매일 반복됩니다. 그러다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아내가 바람을 핀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에드는 자유국가이니 괜찮다고 말합니다. 이발소에는 드라이클리닝 사업가가 찾아와 에드에게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에드는 투자금 1만 달러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친구이자 아내의 불륜 상대에게 협박 편지를 씁니다. 사건의 발단은 그렇게 우연한 기회와 더 우연히 맞아 떨어지는 상황으로 에드를 매혹합니다.
사건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글로 서술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어쩌다 보니, 에드의 아내는 살인과 횡령이라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고, 어쩌다 보니 아내는 자살을 하고, 어쩌다 보니 에드는 살인죄로 사형을 받습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직접적인 처벌을 받지 않고, 그 행동이 돌고 돌아, 다른 사람의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하지만 인물들은 그것을 별 수 없이 받아 들게 되고, 결과론적으로는 모든 것이 내부의 소용돌이 안에서 완결됩니다. 이발소 싸인볼의 색색의 리본이 아래를 향하지만 다시 위에서 나타나는 착시효과처럼 눈에는 분명히 보이지만 생각과 정리를 하려 들면 꼬여버리는 사건들입니다.
변호사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들먹이며 관찰이라는 행위가 본질을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궤변이지만 그의 논리는 그렇습니다. 관찰하면 더 모른다는 겁니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제목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이 흐릅니다. 베토벤은 자신이 작곡하면서도 귀로 듣지는 못했습니다. 머리 속에서만 들었습니다. 거기에 있었지만 사실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회상하여 서술하면서도 그저 관찰자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한 발 떨어져서 봐도 그는 알 수가 없습니다. 두 발 떨어져 보는 우리 관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발소의 싸인볼처럼 패턴 속에서, 패턴을 찾으며 살아가던 에드워드는 길을 잃습니다. 사는 것은 이발이 아니니까요. 그는 언제든 한 발짝 잘못 내디딜 수 있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걸 막아주고 있던 힘은 아내 도리스였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나선형을 그리며 추락한 에드의 삶의 마지막은 완전한 백으로 물들며, 완전한 빛 속에서 가려지며 영화와 함께 막을 내립니다. 베토벤의 소나타를 들으며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마주하는 관객의 마음에는, 사건 서술의 혼란보다는, 씁쓸함만이 압도적인 하얀 빛처럼 뒤덮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