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그런 애들 좋아하잖아요"
누군가를 생각하는 따수운 순간
작년 근처에 사는 직장 후배와 이야기하다가 집 앞에 생긴 네일샵을 소개하는 일이 있었는데, 후배가 말해 왔다.
"언니는 그런 애들 좋아하잖아요"
원래 가던 네일 샵 사장님이 목디스크가 걸려 오랜 기간 쉬고 있어 정착하지 못하고 새로운 곳을 찾던 도중 집 앞 30초 거리에 네일샵이 새로 생겼다. 예약하고 방문했는데, 유리문 앞에는 턱시도 색을 입은 길고양이가 햇빛을 받으며 평온한 표정을 하곤 앉아있었다. 터줏대감처럼 도망가지 않았던 고양이를 보고 신기한 마음이었다. 앉아서 케어를 받던 중 궁금해졌다.
사실 나는 미용실이나 네일샵에서 말을 길게 하지 않는 편이다. 가끔은 눈 감고 자는 척도 하고 핸드폰을 보기도 하고 멍도 때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곳 사장님은 내가 경험했던 다른 곳과 다르게 나에 대한 질문이 많지 않고, 필요한 말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20대 중반의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며, 고양이가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 올라왔다.
"문 앞에 고양이 케어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그렇진 않은데, 어느 날부터 계속 오더라고요. 가끔 물도 챙겨주는데, 나가면 부비부비를 엄청해요. 친구는 저한테 간택당했다고 해요. 나중에 자리 잡히면 데려가고 싶어요" 매장을 오픈했다는 게 이미 자리를 잡은 것이라 생각되었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서로 어디 쪽 거주하는지 묻다가. 왜 멀리서 이곳까지 출근을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일을 하게 되었는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고향은 지방이고, 지금 거주지는 경기도 쪽.
10대에 외고를 조기졸업하고, 대학 졸업 후에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직업을 다시 찾던 도중 평소, 무언가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어머니께서 네일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격증을 따고 5~6명이 일하는 샵에서 근무를 몇 년 했고, 친척들의 만류와 네일을 업으로 하면 공부를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어느 사회생활처럼 어떠한 계기로 직장생활의 현타가 와서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고 했다.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빠르게 시작한 사회생활 덕분이었는데,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 졸업하고 나면 홀로 독립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해오셨고, 실제로 부모님이 함께 살다 졸업하는 해에 지방으로 다시 올라가셨다고 한다.
그녀는 주도적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네일의 컬러는 기본적인 컬러만 있었고, 오늘의 네일도 한판의 절반 정도 채워져 있었다. 다른 샵보다 비교적 네일 예약을 하기도 수월했다. 모양을 내지 않고 컬러만 레드, 누드 중에서만 고르면 되는 나에게는 딱 맞았고, 네일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져 좋았다. 손을 많이 쓰는 나는 보통 네일 받으면 스크래치가 금방 생기고, 색을 빨리 잃고, 중지가 이상하리라 만큼 금방 떨어진다. 그래서 "또 떨어졌구나!"그냥 그러려니 넘기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서너 번 정도 받은 뒤에는 같은 곳이 떨어지던 게 어느 날부터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다닌 지 6개월이지 나고, 내 손톱은 정사각형에서 세로로 조금 길어진 모양으로 바뀌고 열 손가락 온전히 유지한 채 재방문하게 되었다. 문득 손을 보다가 사장님께
"제 손톱 좀 길어진 거 같지 않아요?"
"맞아요. 정말 길어졌어요. 네일도 잘 유지돼서 오고요. 한동안 같은 곳만 떨어져서 연구 좀 했습니다."
그때 또 후배의 말이 생각이 났다.
"언니는 그런 애들 좋아하잖아요"
"그런 애들이 누구야??"
"언니는 열심히 하고, 열심히 사는 어린애들 좋아하잖아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맞아 나는 일할 때 성의 있게 일하는 사람을 좋아해"
"근데 내가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말한 적이 없는데 이 아이는 어떻게 아는 거지?"
동시에 전 직장 상사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지연이는 어린 뉴페이스 좋아하잖아"
"뉴페이스 킬러잖아"
"와 왜 다들 내가 어린애들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전 보스가 생각이 났다.
내가 주니어 시절 인사발령 후 정평이 자자한 팀장님과 일을 하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로 그분과 일하게 된 것은 나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하루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이 내 밑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팀장님께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식으로 가볍게 툭 말씀하셨다.
"이 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아이들은 잘해줘야 해"
그 말인즉슨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그 아이가 좋은 경험을 하고, 잘 적응할 수 있게 기다려 주고, 잘 해낼 수 있도록 성의 있게 알려줘야 하는 것이 이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며,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거였다. 처음으로 부하 직원을 트레이닝하면서 감정이 북북 올라오는 것도 있었지만, 언제나 되뇌었고, 나도 선배들의 도움과 관심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생각하며,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던 거 같다. 그러다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알려주려 해 시행착오도 있었으리라. 현재 나와 함께 하는 친구들은 나를 무서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놀려대고 아직도 만날 때마다 무서웠다고 기억하는 친구가 있기도 하며, 너무 시켜대서 나 때문에 그만두고 싶었는데 처음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이렇게 까지 해야 하냐며 절레절레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에게 옳거나 좋은 사람이기는 어려울 것이라..
그러다 문득, 고객으로 알고 지낸 분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생각이 났는데, 언제나 진심으로 대해주셨다.
"다른 곳에서 오라고 하면 안 가는데, 지연 씨가 오라고 하면 오는 거예요."
"언제 대빵 돼요?"
"나도 영업 쪽에서 일하지만 사람 보는 눈은 같아요."
"새로운 곳에 가서도 지금 하는 거처럼 진심으로 하면 분명 또 잘될 겁니다"
때론, 사회에 먼저 발을 내디딘 분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시고, 진심 어린 격려를 해주시기도 한다. 그저, 감사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요즘 나도 네일샵 사장님을 보면 예약이 꽉 차고, 재미있는 이달의 아트가 나오면 덩달아 기뻐지고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어머 이제 진짜 예약 잡기가 어려워요~~"
"너무 귀여워서 꼭 해보고 싶은데 손에는 못하니 나중에 발에 할까요?"
"좋습니다. 발톱도 짧으니 자라면 자르려 하지 말고 불편하다 싶으면 바로 오세요!"
오늘도 내 손을 보고 있노라면,
"잘 쓰고 오세요~" 네일집 사장님의 특유 억양이 들리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