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걷던 길
지금은 찾을 수 없어 사라져가는 나의 길
오늘은 오랜만에 쉬는 날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여유롭게 침대에 누워있던 내가 순간 행복하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 집에 2년을 넘게 살고 있지만, 창피한 말이지만 아직도 내 방에는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설치하지 않았다. 아직도 결정하지 못해서, 사실 찾아보지 않아서 창문만 존재한다. 해가 뜨고 오전 일정 시간에는 햇빛이 쏟아진다. 기분 좋은 햇살에 창문을 열었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 있는 가을에도 날씨가 꼭 여름같이 포근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굳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할아버지 존함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박자 동자 현자를 정확히 알고 전화를 끊었다.
박동현 우리 할아버지는 참 포근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매년 여름에는 몇 주 ~ 한 달 가까이 외갓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주로 있었다. 그때마다 외할아버지와 이런 햇살을 받으며 길을 걸었다.
우리 외갓집은 경상북도에 있는 임당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 있는데, 푸르고 햇빛도 강하고 곳곳에 물도 많았다. 외갓집은 마을 중심에 약 2층 높이에 집이 있었고, 본채에는 부엌과 방들 툇마루 계단을 두세 개 내려가면 마당이 있었고, 정면 가운데 시즌에 따라 평상이 있거나, 바베큐 파티 도구, 여름에는 큰 모기장 같은 것을 쳐서 벌레들이 못 들어오게 하곤 램프를 켜고 돗자리를 깔거나 텐트를치곤 하늘에 별을 보며 잠도자고 했다. 마당 왼쪽으로는 소 두 마리가 있는 외양간이 있었고 심심할 때마다 지푸라기나 풀 같은 걸 직접 먹여줬었다. 옆에는 소여 물을 끓이는 가마솥과 딸린 창고 같은 작은방이 있었고 마당 끝에는 닭, 토끼우리. 염소나 강아지 한 마리가 오른쪽 한켠에 묶여 있었다. 본채 뒤로는 항아리들이 놓여있고, 가끔 놀러 온 고양이와 나비, 꽃들이 있었다. 가끔 할아버지가 집을 비우실 때는 나는 빙빙 집 곳곳을 돌고 툇마루에 앉거나 동물들과 시간을 보냈다.
마당 끝 담에서 턱을 밟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발목정도의 깊이의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엄마나 이모랑 방망이를 가지고 가서 그곳에서 빨래를 하거나 가재를 잡고 놀기도 했다. 집 대문을 열고 내려오는 내리막길에 막걸리를 만들어 파는 가게에는 할아버지들이 항상 앉아있었고, 맞은편에는 점빵이 있었는데,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을 때 찾았으나 서울만큼 종류가 많지 않아 먹고 싶은 게 없어 속상하기도 했다. 어릴 때 나는 치토스를 좋아하고 새우깡이나 초코파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Y자형 길을 내려와 5번 정도 걸으면 끝나는 짧은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으면 과수원 가는 길이 나왔고, 오른쪽에는 시냇물이, 왼쪽에는 집들, 중간에 약국이 있다가 길 끝에는 한 대만 서있을 수 있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버스정류장을 끝으로 세 갈레의 길이 있었는데 정중앙에 있는 과수원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였고 중간에 수호신 같은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어린 내가 그 나무와 버스정류장을 기점으로 얼마나 걸어야 과수원에 도착하는지, 집에 도착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덜덜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과수원에 가거나 과수원 바로 앞에 있는 강에 물놀이를 가기도 했고, 가끔은 깨밭이나, 다른 강가에 낚시를 따라가기도 했다. 버스정류장 가는 길과 과수원 가는 길 중간엔 높은 나무 하나 없이 온전히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모습은 항상 그곳을 지났을 때 그 햇빛을 받고 따뜻한 웃음을 짓는 모습이었다.
한 번은 만화인 쾌걸조로에 꽂혀서 검을 갖고 놀고 싶어 하던 나에게 나무를 깎아 만들어 주시고, 허구헌 날 물놀이 하다 신발을 끊어먹었던 내게 장날에는 손잡고 시장에 가서 새 신발을 신겨 주시고 같이 짜장면을 먹었다. 제사를 준비할 때는 생밤을 깎아 입에 넣어주시곤 했는데 그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낮에는 함께 온종일 밖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방에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었는데, 십 리를 걸어서 학교에 갔던 이야기. 보자기로 가방을 만들어서 들고 갔던 이야기이다. 어릴 적 5~6세의 나의 여름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날 과수원에서 여러 과일을 따 먹고, 괴물이라는 열매를 따서 먹고 검게 변한 손과 이빨을 드러낸 채 웃고, 일을 하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과수원 옆에 흐르는 도랑에서 물놀이하다가 청개구리를 잡기도 했다. 바위 같은 곳에서 일어나서 낚시를 하고, 툭 치면 씨를 뱉는 나무도 처음 보고 봉숭아를 찧어 손톱에 올려서 물을 들이고 산에서 가시 달린 나무의 가시가 내 옷에 모두 옮겨 붙어 할아버지가 구해주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정리하고 계셨던 은색 문의 창고 앞에 쌓인 나무로 만든 상자와 돗자리 소재의 파란 색상의 바구니 같은 가방에 수북이 담겨있던 여러 사과와 복숭아를 한입씩 베어 물며 맛보곤 맛이 없으면 뱉고 버리며 철없는 행동도 많이 했던 거 같다.
할아버지와 여러 길을 걷고, 갔지만, 지금 나는 거기가 어디였는지 찾지 못하고 다시 갈 수가 없다.
할아버지만 알고 있는 그때 어린 나와 갔던 장소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냥 그때의 느꼈던 감정, 맛, 촉각, 냄새들만 기억을 어렴풋이 한다. 새로운 것을 알려주시며, 반짝거리게 미소 짓던 우리 할아버지는 박자 동자 현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