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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Jan 16. 2023

비아냥거리고 싶은 딸의 연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한다 해도 이해 못 할..;

부모님께 말씀드린 공식적인 나의 첫 남자친구는 법적 성인이 된 후인 스무 살 때 사귄 동갑내기 친구였다. 수능 끝나고 한 첫 미팅에서 만났다.  중, 고등학교 내내 몰려다니며 함께여서 두려울 것이 없었던 우리 다섯 친구들 중에 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우리 아빠 셨기에 법적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12시 넘어 귀가하는 일이나 술에 취해 들어가는 일등은 물론이며 연애도 기꺼이 허락되지는 않았다.


그런 엄한 아버지 아래 자랐기에, 엄두를 낼 수 없는 일들도 물론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빠가 정해놓은 테두리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 순종적인 딸도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중, 고등학교 6년 내내 전교 2등을 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던 여동생이 있었기에 나의 작은 일탈들은 부모님께 상대적으로 더 위태롭게 느껴지셨을 것이다.


"똑 너 닮은 자식하나 낳아 키워봐야 내 맘을 알지~"

속 썩이는 자식에게 부모들이 하는 레퍼토리다. 정작 내 엄마는 그런 말씀을 한 적도 없으신데 요즘 나는 하지도 않으신 그 말이 환청으로 들리는 것만 같다.



"요즘 중학생들은 말이야~~"

그런 말들을 수없이 들었어도 그것이 내 자식의 일이 되면 그 보편의 일들과는 별개인 듯, 그렇게 낯설고 당황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성적 문제이든, 친구 문제이든 모든 문제에서 그렇다.


중3 되는 딸이,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남자아이랑 사귄다.

나의 중3은 어땠더라... 내가 그쯤에 봤던 고등학생 남자아이들은 어땠더라...

그중에 가장 강렬했던 기억들만 소환해 내 아이와 연결시키는 이 치졸한 상상들을 그만둬야 하는데,

아이가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가면 나의 이 옹졸한 마음이 또 복닥거리기 시작한다.


영화를 본다고 얘기했건만, 전화를 받지 않는 딸에게 화가 나서 문자 폭탄을 보내고, 약속시간을 어긴 딸에게 필요 이상으로 불같이 화를 냈다. 어른스럽지 못하게 아이의 데이트를 비꼬고 싶고,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지만, 최대한 이성을 찾으려 애썼다.


가끔 같이 예쁜 카페도 찾아다니고, 엄마의 새로운 사업 이야기며 딸의 친구들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 사이좋은 모녀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 맘에 들지 않는 딸의 연애를 꾹꾹 참고 있느라 마음이 복닥거린다.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귀가한 딸을 불러 앉혀 놓고 엄마가 너의 연애가 매우 바람직하다거나 마음에 들어서 그냥 두고 보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인지시켰다. 기말고사 성적이 떨어진 것도, 가끔 아침에 매우 힘들게 일어나는 것도 모두 이 연애가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명확한 사실 앞에서도 대놓고 아이를 다그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하지 말라고 한다고 안 하지 않을 거란걸 개탄스럽게도 나의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아이보다 한 살, 두 살쯤 많던 고등학생 때 나는 다 컸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1,2년만 있으면 나도 이제 성인인데 뭘, 내 인생은 어차피 내가 살 거잖아, 하는 반항적인 생각들을 품었었던 것도 같다. 나의 소소한 일탈을 내 부모님은 알고, 또 모르고 속아주셨을 것이다. 그때 내 엄마, 아빠도 처음이셨을, 고등학생이 된 첫 딸의 낯선 모습들에 적잖게 당황했고 속을 썩으셨을 것이다.



나의 고1 겨울 어느 날엔가 내 아빠는 처음으로 딸이 남자아이와 서 있는 뒷모습을 목격하셨다. 지금 말로 썸 타는 사이 정도였던 그 남자아이는 그 추운 날 우리 집에서 한 시간을 떨었다. 내가 잠깐 잠들어 삐삐 메시지를 늦게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추운 날 뭘 그렇게 오래 기다렸어~" 하며 살짝 팔짱을 낀 내 모습을 하필 우리 아빠가 목격한 것이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내 딸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굳이 확인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집에 내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30분 후쯤 아빠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빨간 목도리를 내가 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지 25년쯤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해가 간다.

그날 나는 거의 처음으로 아빠에게 등짝을 맞았다. 세게;;



딸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아파트 앞에 나가 딸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딸아이 같은 실루엣이 보였는데, 남자아이와 함께였다. 서로 팔을 잡아끌며 깔깔거리며 장난치며 오는 모습이었다. 일단 안쪽으로 숨었다. 아니길 바랐다.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딸이 학원 마치고 오는 길에 그 아이가 마중을 나왔을 수도 있는 일인데, 뭐 큰 일도 아닌데 그냥 아니기를 바랐다. 딸이 들어가는 방향과 다른 곳에 있다가 뒤늦게 들어와, 내가 봤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해 주었다.


자식을 키우며, 나의 어린 날들을 돌아보고, 내 부모를 생각하고, 당황스럽고 치졸한 나의 욕심과 민낯을 본다. 또 매우 고단한 인내심을 요구받기도 한다. 이런 일로 마음이 복닥일 때는 글이 잘 써지질 않는다.


몇 줄 쓰고 저장, 또 몇 줄 쓰고 저장.

요즘 계속 브런치에 쓰다만 글들만 늘어간다.


엄마로 살기가 참.. 녹록지가 않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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