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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Feb 01. 2024

애 셋과 함께한 동해여행기

P 의 자유 여행.

마지막주, 하루 더하기 반을 휴강할 수 있어서 급하게 여행 일정을 잡았다. 나는 한 달이 긴 달 마지막주에 한 번씩 쉴 수 있고, 남편은 마지막 주는 휴가가 어렵다.

(오예)


방학인 아이들이랑만 동해 여행을 계획했다. 숙소만 정하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여행 전날도 아이들도 나도 밤까지 각자의 스케줄을 열심히 살고, 밤 11시에 1박 2일 짐을 간단히 챙겼다. 무리하지 않고 잘만큼 자고 아침 9시쯤 출발했다.


"엄마 우리 오늘 일정은?"


무계획이 계획이다. 숙소 쪽으로 가는 길 쉬고 싶은 휴게소에서 쉴 거고, 배고플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굳이 MBTI로 말하자면, 우리 가족 다섯 중 남편만 판단형인 J. 우리 넷은 모두 인식형인  P이다.

외부환경 본인의 생각대로 흘러가야 편안한 J 아빠와. 자유로운 환경이 편안한 우리 넷. 그중 아마 나의 P가 가장 강할 듯. (안 맞아 안 맞아 ;;)



J가 꼭 계획을 잘 세워서 J 가 아니라,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거라는데, 딱 맞다. 여행 갈 때 남편은 스스로 찾아보고 계획을 세우지는 않기 때문에, 그냥 나의 스타일에 맞출 수밖에 없어 우리 가족의 여행은 거의 이런 식이나, 남편이 빠진 우리 넷의 여행은 더욱더 자유, 그 자체였다.


삶 자체를 그렇게 계획 없이 살 수는 없다. 심지어 이런 내가 사업이란 걸 벌이겠다고 하고 있으니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더 신경을 곤두 세우고 먼 미래까지 계획을 세우느라 애를 쓰며 살고 있다. 그 계획이 틀어지거나 변경된다고 크게 스트레스받지는 않는 성격 좋은(?) P이지만, 대책 없이도 지를 수 있는 배포는 아니라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지를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은 그저 힐링을 위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무계획 자유 여행이 좋다.


이번 숙소는 급히 잡느라 자세히 보지도 않았지만, 단독주택 스테이였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콘도나 호텔이 더 좋다는 작은 딸. 이런 단독주택 너무 좋다는 아들과 큰 딸. 난 다 좋다. 그저 한가로운 이 시간이.



첫날엔 큰 아이가 3시에 스케줄이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동아리를 방학중에 미리 결정하고 있다. 학술동아리 하나, 비학술 동아리 하나를 필수로 선택해야 하고, 모두 서류전형과 줌 면접으로 2학년 선배들이 뽑는가 보다. 그중 하나가 하필 그날 면접이 있어, 컴퓨터를 들고 와 숙소에서 면접을 치렀다. 동생들을 당연히 내쫓을 줄 알았는데, 내쫓지 않아 줘서 언니, 누나의 면접하는 모습을 동생들이 직관할 수 있었다. 나는 거실에서 들어보니 조금 버벅대는 답변도  있고, 대체적으로 잘한 거 같았는데, 끝나고 나서 입학 면접 보다 어려웠다며 큰 한숨을 쉬었다. 잘 울지 않는 딸인데, 선배 10명이 보고 있었다며 15분간의 면접이 쉽지 않았는지 조금 눈물도 보였다.

어쨌든 끝이 났으니  홀가분하게 바다로 향했다.




도시 건물 사이에 살다가 만난 동해의 너른 바다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속 깊이까지 샤워가 되는 느낌이었다.


양말 적신 아들놈 등짝 스매싱하고 양말 사다  던져주고, 딸들은 사진도 실컷 찍고, 강릉 네 컷도 찍고, 소품샵도 가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나는 해산물에 그다지 흥미가 없음에도 아이 셋은 모든 해산물에 진심이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는 당연한 코스다. 바다 보이는 횟집에 앉아 소주 한 병 없이 후다닥 회만 깨끗이 비우고 나서는 우리 조합이 신기했는지 주인분이 물으셨다. 셋 다 내 아이들이냐며. 셋이나 낳아 애국자라며.


큰 아이 열입곱. 쌍둥이 열셋. 나 마흔넷.


내 노화보다는 아이들의 성장이 빨라서, 이제는 나보다 훌쩍 큰 이 고등학생 되는 딸과 함께 다니면 이렇게 다 큰 딸이 있냐며 놀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젊어 보여서라기보다는 일찍 낳아 일찍 키운 것이 팩트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스물여덟에 낳은 딸. 그 딸의 이십 대가 3년밖에 남지 않았다.


아이 셋만 데리고 혼자 하는 여행. 힘들지 않냐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큰 아이의 사춘기는 끝이 났고, 쌍둥이는 아직이라 지금은 평화기다. 쌍둥이의 사춘기.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지만, 두 번째니 유연히 대처하는 나이길 소망해 본다. 평화기라도 티격태격 늘 있지만, 비교적 코드 맞는 이 세 아이. 이렇게 셋이도 잘 놀고, 나도 잘 도와주고, 편안하고 즐겁다.



회 먹고, 또 갑자기 검색해서 찾아가 본 안반데기.

아무리 15년 차 운전 경력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꼬불길을 30분 이상 달려가려니 어찌나 무서웠던지. 아이들이 긴장할까 티 내지 않고 씩씩하게 달려가 마주한 수많은 별들.


도심에서 늘 저 멀리 흐릿하게 가물거리는 별들만 보다가 쏟아질 듯 선명하게 반짝거리는 수많은 별들을 가까이 마주하고 서 있자니, 끝없는 우주가 조금은 느껴지는 듯했다. 외계 문명이 있냐 없냐, 우리 말고 다른 생명체가 있어도 무섭고, 없어도 무섭다는 둥. 셋이 조잘조잘 떠들어 대며 또 그 무서운 길을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넷이 함께 넷플 영화 한 편 재미나게 보고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해돋이를 보러, 안 일어나는 놈들 후드려 깨워 달려갔으나 구름이 많아 실패!

바다 근처에서 산 들깨 미역국이 맛있었으니 그걸로 감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니 거꾸로 더 들어갔다 돌아 나와야 했지만 무릉별유천지도 들렀다. 넷이 함께 집라인도 타고, 알파인 코스트도 탔다. 루지 타러 갔다가 루지 오픈전이라 바꾼 코스였는데, 알파인 코스트가 훨씬 재미있다. 쌍둥이까지 모두 이제 키가 150이 넘으니 이런 기구 타는데 드디어 제약이 모두 사라졌다. 산속에서 맘껏 소리 지르며 나도 즐거웠다.



쇄석장이 있다는 공원도 좀 돌아보고, 유명하다는 시멘트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흑임자 아이스크림이라 비쌌는데 작은 딸은 입맛에 맞지 않았다. 하나에 6500원인데. 컥.


눈 쌓인 산을 바라보고 한참을 서있었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산의 굴곡들이 경이로웠다. 그곳에서 큰 딸은 어제 본 면접의 합격소식을 들었고,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돌아오는 길 찾아갔던 맛(?)집은 생각보다 별로였지만, 배를 채운 걸로 만족하고 장작 4시간이 넘게 운전하고 돌아와 나는 30분 수업 준비후 2시간 저녁 수업까지 마쳤다. 집에 돌아가니 아이들은 모두 이틀 공백으로 당장 내일 가야 할 수학학원 숙제 중이었다.


그렇게 꽉 찬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빠르게 우리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도심보다 고요한 시골이 좋아진다. 아이들은 도심으로 들어서니 여행도 좋지만 역시 사는 건 도심에 살고 싶다고 한다. 나도 아직은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이 있기에 이렇게 한 번씩 고요 속에서 마음 샤워를 하고 다시 북적한 도시로 돌아와 삶을 살아야겠지.


또, 운동화 끈을 고쳐 매 본다. 발전, 혼돈, 성공, 도전 그리고 실패, 쉼, 고요.. 이 모든 것들이 점철된 것이 인생이고 삶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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