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의 계단

3악장

by Bloom지연

— Adagio con fantasia

(아다지오 콘 판타지아: 천천히, 환상적으로)

현실의 막이 조용히 닫히고,

상상의 무대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전축 앞에 조용히 섰다.

손끝을 천천히 뻗어, 바늘 위 작은 레버를 밀어 올렸다.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딸깍.


검은 판이 느릿하게 돌기 시작했다.

바늘이 조심스럽게 표면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숨을 멈춘 채,

가장 낮고 길게 스친 그 숨소리를 들었다.

1악장에서처럼—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의

그 한 줄기, 조용한 신호.


익숙한 현악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선율. 오래된 교향곡처럼,

마치 내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반복해 그리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꿈을 꾸듯,

살랑살랑 레이스 옷자락을 잡고

달빛 아래 조용히 빙글빙글 돌았다.

머릿속에는 작은 궁전의 홀,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나만의 무대가 떠올랐다.


그 순간—

어디선가 삐걱,

조금 어긋난 음 하나가 들려왔다.


나는 선 채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전축을 바라보며 멈칫했다.

그건 분명, 방금 전까지 흐르던

황홀한 선율과는 어딘가 맞지 않았다.


손에 들린 레이스 자락을 살며시 멈추고,

나는 숨을 들이쉰 채 주위를 살폈다.

공기의 흐름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곧이어

낯선 바이올린 선율이

스르르, 번져 들기 시작했다.


어? 이건… 어젯밤, 아니

지금껏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소리인데?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익숙한 교향곡의 뒤를 잇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결이 다르고

속을 간질이듯 스며드는 선율이었다.


그건 분명, 어젯밤에는 없던 소리였다.


화음은 더 또렷해졌고,

그 선율이 내 길을 따라 스치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발밑의 공간을 흔들기 시작했다.


바닥이 꿈틀거렸다.

공기마저 낯설게 울렸다.


나는 놀라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전축 쪽으로 다가섰다.


왜 자꾸… 거기로 끌리는 거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대로

전축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돌고 있는 검은 판의 가장 중심,

바늘 끝이 닿아 있던 그 한 점의 심지로.



눈을 떴을 때,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공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주변은 깊고 투명한 어둠이었고,

그 어둠의 한가운데—

수없이 반짝이는 계단들이 떠올라 있었다.


그건 계단이면서도, 계단 같지 않았다.

반짝이는 음표들이 엇갈리며 만들어낸

공중의 길.


어떤 음표는 콩나물처럼 생긴 꼬리를

위로 쏘아 올린 채 툭툭 솟아 있었고,

어떤 음표는 거꾸로 매달린 채

종처럼 아래로 길게 늘어져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 음표들을 조심스레 하나씩 밟으며

하늘에 떠 있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작은 소리가

또르르 퍼져나갔다.


이게… 뭐야?

나 지금… 진짜 음악 속에 있는 거야?

꿈인가? 그래, 이건…

내가 늘 상상하던 바로 그 모습이야!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려웠지만,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한 계단을 올랐다.

음표가 내 발을 반기듯 울렸다.

빛의 흐름이 계단을 따라 길게 뻗어 있었고,

그 빛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끝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


정말 온 거야. 내가 꿈에 그리던,

그 음악의 세계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즈음,

나는 드디어 계단의 끝에 다다랐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자,

그제야 눈앞에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하늘까지 닿을 듯,

너무도 커서 한눈에 다 담기지 않는 궁전이었다.

엄마의 보석함에서 봤던 반짝이는 빛들이,

이 궁전의 벽면에서도 어른거렸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너무도 황홀한 광경이었다.

작은 조각들이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고,

계속 색이 바뀌는 것 같기도 했다.

분명 보라였는데… 어? 지금은 푸른색?

아니야, 무지갯빛이다!

비 온 뒤 하늘에 걸리던, 그 일곱 가지 색!


나는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숨을 내쉬었다.


궁전 꼭대기에는 이상한 모양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내가 음악 공책에 그려본 오선지 같기도 했다.

선들이 둥글게 말리고 겹쳐져서

마치 음표들이 살고 있는 집 같았다.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는 밤비의 손을 꼭 잡았다.


“밤비! 진짜 우리,

음악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아.

같이 여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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