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눈빛의 무게

광주 3

by Bloom지연

1980년 5월, 광주

대문이 덜컥 열리며 고요가 갈라지고 있다. 집 안의 공기는 순간적으로 얼어붙고, 어린 동생의 심장은 그 소리에 맞춰 불규칙하게 뛰고 있다. 발자국 소리가 마당을 건너 복도를 따라 방으로 다가온다. 발소리 하나하나가 어둠을 가르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울린다.


문이 천천히 밀리며 형이 들어선다. 숨결은 거칠고, 이마에는 아직 식지 않은 땀이 맺혀 있다. 눈빛이 책상 위와 공책, 그리고 동생의 얼굴을 번갈아 훑는다. 단호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감춰진 긴장이 어른거린다.


“형…”

동생의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오지만, 말은 끝맺지 못한다.


형이 서랍을 열어 접힌 종이 뭉치를 챙긴다. 동생이 다급히 팔을 붙잡는다.

“형, 밤인데 또 나가려고? 제발 가지 마.”


그 순간, 형의 눈빛이 동생을 꿰뚫는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멎는다. 말 없는 눈빛이나, 그 무게가 공기를 짓누른다. 동생은 고개를 떨군다. 대답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눈빛이다.


형은 짧게 숨을 고르고, 낮게 말한다.

“민수야, 넌 어서 자기나 해. 별일 없을 거야.”

그 말은 다독임 같으면서도 단호한 경계다. 형은 동생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낸다.


부엌 쪽에서 엄마의 발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형은 그 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다리고, 틈을 타 몸을 돌려 방을 나선다. 마당을 건너 대문으로 향한다. 다시 덜컥, 소리가 울린다.


남겨진 동생은 그 눈빛의 잔향 속에 얼어붙은 듯 앉아있다. 그러나 심장은 요동치고, 머리는 ‘멈춰야 한다’고 외친다. 민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끌며 대문을 향해 내달린다. 서늘한 밤공기가 거칠게 파고들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형의 뒷모습이 골목 끝으로 향한다.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 불빛이 길 위에 얼룩처럼 떨어지고,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난다. 동생은 멀찍이 따라붙으며 숨을 죽이고 있다.


골목 어귀, 낮은 목소리들이 바람을 타고 흘러온다. 어둠 속에 대학생들이 모여 있다. 전단지를 나누고, 무언가를 적고, 긴장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 무리 한가운데에 형이 서 있다.


“이 구호,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내일 모임에 빠짐없이 전달하세요.”

누군가 말한다. 형은 공책을 펼쳐 짧게 받아 적는다. 동생은 그림자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단순한 낙서가 아님을, 그 기록이 무언가 더 크고 위험한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형의 목소리가 울린다. 짧지만 단호하다. 손짓 하나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메모를 한다. 주저함은 없다. 형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결심으로 빛나고 있다.


동생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는다. 두려움과 믿음, 불길함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멀리서 군홧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긴장한 눈빛들이 서로를 스친다. 형은 고개를 들어 짧게 지시한다. 학생들이 흩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민수는 그림자 속에 얼어붙은 채,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다. 형의 모습은 흔들리는 불빛 사이로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 그 눈빛은 굴복하지 않으려는 굳은 용기를 품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용기 때문에, 앞으로 닥쳐올 위험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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