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2 : 길을 찾는 도덕경
재능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경쟁하려는 욕구가 사라진다.
-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p. 36
처음 이 문장을 읽을 때에는 의미가 한 번에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 문장은 문장일 뿐 나의 해석이 떠올라야 하는데 쉽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부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가 헷갈렸다.
재능을 귀하게 여기라는 것인지, 재능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지....
처음에는 재능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재능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경쟁하려는 욕구가 사라지고, 그렇다면 누구도 노력을 하지 않게 되어 발전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노자의 특징과 그 시대의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좀 애매하게 느껴졌다.
나의 관념에서 자신이 지닌 재능은 소중히 여겨야 한다.
가진 것을 소중히 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탐내지 않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은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관념에서 경쟁하려는 욕구가 강한 것은 나쁜 것이다.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수양이 더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위의 인용문은 '이독제독(以毒制毒)'같은 느낌인가 보다.
독으로서 독을 다스리는 것처럼.
귀한 재능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부정적 행동을 함으로써 더 큰 악인 '경쟁의 욕구'를 누르는 것.
재능을 귀하게 여기는 순간, 내가 못 가진 타인의 재능이 탐나고 샘나게 되고, 내가 가진 재능도 뽐내고 싶어 져 교만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경쟁의 욕구를 누르는 것보다 재능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 오히려 핵심인가 싶기도 하다.
'타고난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까.
타고난 것에 연연하여 패배감을 느끼기보다는, 그냥 자신만의 길을 가라는 것.
얼마 전에 본 인터넷 유머글이 떠오른다.
'이연복은 후각을 잃었지만 스타 셰프가 되었고, 평발인 박지성도 위대한 축구 선수가 되었다.'는 어떤 글에 달린 답글이 '왜 후각이 있는 박지성은 셰프가 되지 못하고, 평발이 아닌 이연복은 축구 선수가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재능의 측면으로 보면 후각이 없어졌는데 셰프가 되려고 하거나, 평발인데 많이 뛰어야 하는 축구선수가 되려고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어쩌면 그들은 '스타셰프'나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려고 그 길을 걸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자신이 원하는 길, 자신이 찾은 길을 간 게 아닐까?
아름다움은 공포와 겨루었고 혼돈은 영리함과 함께 춤추었으며, 세상은 장대한 이론과 하찮은 경쟁으로 뒤흔들렸다. 개인이든 나라든 그 어두운 숲을 빠져나가는 길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우리 시대의 상황과 비슷하게 들리지 않는가.
-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p. 38.
위 문구는 저자 켄 리우가 표현한 노자 시대의 시대상이다.
아름다움의 대적자가 추함이 아니라 공포이며, 혼돈 속에서 오히려 영리함이 피어나며, 세상이 쓸데없이 큰 이론과 그보다 더 하찮은 경쟁으로 뒤흔들린다는 것.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상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런 표현을 어떻게 해내는지 경이롭다.
어쨌든. 결국 '어두운 숲을 빠져나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노자에게나 나에게나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내 길을 걷는 것' 뿐이다.
빠져나가지 못하겠다고 주저앉아버리면 갇힌다.
정답을 찾겠다고 이 방향 저 방향 남의 길을 따라간다고 해서 그것이 내 답은 아니다.
지금 가는 길이 답이 아닐 수 있지만,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끝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그 길을 가봐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 길을 무조건 혼자서 묵묵히 가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내 길'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기다리는 길일 수도 있고, 구원자를 기다려야만 하는 길일 수도 있다.
잠시 쉬어갈 수는 있더라도, 포기하지는 않고 기다려 보자.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 길'이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