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2 : 길을 찾는 도덕경
그리하여 도를 깨달은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행하고, 말없이 가르친다. 그는 세상이 방해 없이 번창하도록 내버려 둔다.
-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p. 35
'하지 않음으로써 행한다'
이 말이 이해된다는 것 자체가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초심자의 수준을 지났다는 뜻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초심자는 항상 '열심'이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초심자의 수준을 지나는 그 순간 가장 많이 듣는 조언 중에 하나가 '힘을 빼야 한다'는 말일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듯이, 초심자에게 그 말은 힘이 빠져버리고 의욕이 사라지는 말이다.
가끔은 화가 날 수도 있다.
내 열심을 인정받지 못한 것 같고, 노력하지 말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분노와 무력감과 혼란의 시기를 지나고 나면, 깨닫는다.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운동할 때도 힘을 주는 것보다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하라는 것이 더 어렵다.
조언을 하는 것보다 튀어나오는 조언을 누르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훨씬 어렵다.
몸에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 몸에 나쁜 습관을 버리고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체화된다'인 것 같다.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사람의 뇌는 부정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코끼리를 떠올려 보세요.'는 가능한 지시이지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를 듣는 순간 우리는 코끼리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놓아버리고, 자연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타고난 것을 거스를 정도로 수많은 도를 닦고 깨달음을 얻어야만 가능한 경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몸으로 체득하는 것에 가깝다.
나의 교사 생활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
수업 시간 내내 내가 떠드는 것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을 줄이고, 아이들의 생각의 영역을 넣는 것이 훨씬 어렵다.
가끔은 내 설명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이다.
더 나아가면, 아무리 말로 훈화나 잔소리를 해도 소용없다.
나는 국어 교사이기 때문에 가끔 학부모님이나 동료 선생님들이 글을 빠르게 잘 읽는 법, 자녀에게 책을 읽히는 법에 대해 질문하실 때가 있다.
그러면, 재수 없고 건방질 수 있지만 내게 떠오르는 답은 하나다.
"선생님이(어머님이) 책을 읽으셔요."
그러면 보통 웃음이 돌아오고 다른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근데 이것도 내게 체득된 것이다.
아직도 나의 부모님은 자기 전에 책을 읽다가 주무신다.
(너무 피곤해서 한 장도 못 읽을지언정 머리맡에 항상 책이 있다.)
항상 책을 읽고, 신문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계셔서 당연히 누구나 그런 줄 알고 자랐던 시기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내게 '책을 읽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내가 만화책방에 내 용돈을 모두 쏟아부으며 그 작은 책방에 안 읽은 순정 만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만화책만 읽던 시기에도 '만화책 읽지 마라'는 말씀을 하신 적도 없다.
그냥 본인이 읽으셨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보고 자랐다.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인가.
'말없이 가르치는 것.'
아이들에게도 그렇다.
청소를 잘하자.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자. 서로 존중하자.
입이 닳도록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아이들은 '보고' 배운다.
나는 아직 자녀가 없지만, 자녀가 있는 분들은 말한다.
소름 돋게도 내가 싫어하는 나의 습관이나 버릇을 아이가 따라 할 때가 있다고.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내 말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말하기 습관이나 방식 등을 배운다.
그래서 국어 공부를 하고, 수능 특강을 공부하고, 점수를 올려주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바르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일이나 과제를 대하는 태도 등.
나 역시 그랬듯이 아이들은 결국 내가 가르쳐준 국어 지식은 다 잊어버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만을 일부 체화하고 떠나갈 테니까.
곧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면, 나도 이런저런 욕심과 걱정이 올라온다.
얼마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도를 닦는다.
아이는 내 분신이 아니고, 독립된 개체라는 것을.
심지어 내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내가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올바르게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간섭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스스로 자라도록 지켜보는 것.
말로 쓰면서도 가능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