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2 : 길을 찾는 도덕경
"걸을 수 있는 길은 영원한 길이 아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불변하는 이름이 아니다."
이 책의 첫 번째 글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 문장이다. 그리고 작가는 도가에 대해 모르더라도 이 구절은 누구나 알고 있는 구절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 문장보다 아래의 문장이 더 익숙하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정도의 해석으로 알고 있는 이 구절이 우라 나라에서는 제일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유명한 구절도 좀 다른 것일까?
아니면 혹시 이 구절이 같은 구절인 '도가도비상도'에 대한 또 다른 번역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문을 찾아보니 두 구절은 서로 다른 구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구절이 같은가 다른가가 아니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같다는 것이 핵심이다.
"걸을 수 있는 길은 영원한 길이 아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불변하는 이름이 아니다."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더 이상 그것은 도가 아니다"
두 문장은 모두 '아니다'라고 끝나는데, 부정문은 무언가를 강조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두 문장을 긍정문으로 바꾸라면 그것도 쉽지는 않다.
논리학이나 수학의 명제에서 말하는 역, 이, 대우와 같이 명제를 바꾼다고 해서 같은 의미가 성립하지도 않을 것이다.
기호의 나열일 뿐인 텍스트는 의미의 발생지가 아니다. 이해는 독자의 정신이 자기만의 경험과 기대라는 언어로 텍스트를 가득 채우고, 죽은 텍스트를 살아있는 이야기로, 자기 고유의 이야기로 변형시키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다.
- p. 21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中
결국 '원문'과 '원전'은 중요하지 않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원문'을 찾는 이유는, 원문이 가장 중요한 원본이라서가 아니다.
다른 해석자의 눈을 거친 해석이 아니라 '나 자신의 해석본'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이 두 문장을 모두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읽는다.
길도, 이름도, 도도 결국 불변하고 영원하지 못하다.
영원하지 못하다는 건 좋은 말이다.
우리가 걷는 길도, 나를 정의하는 이름도, 나의 도도 계속 변화할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현재 내 삶과 선택을 온전히 100퍼센트 신뢰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결국 합리화를 할 뿐, 더 나아지고 싶다고 항상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불변하지 않고, 그대로이지 않다는 것은
나에게 '변화한다'라는 성장과 깨달음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아마 미래의 나는 또 다른 해석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또 다른 경험과 기대로 이 문장을 볼 테니까.
그 역시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기껍다.
'답을 찾는'것은 불가능하다.
'길을 찾을' 뿐.
그래서 이 책에 내가 강하게 끌린 게 아닌가 싶다.
첫 번째 글을 쓰고 나니,
앉아서 잠시 쉬어다가 다시 일어서서 일단 길을 나서고 있는 느낌이다.
목적지도, 방향도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일단 걸어가 보는 것.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을 고여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결국 시간이 흘렀으니 변화한 것이지. 하고 받아들여 본다.
이 책과 이 글의 끝에 내가 어디에 다다라있을지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