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2 : 길을 찾는 도덕경
재앙이 두려운 것은 오직 몸 때문이다.
만일 내게 몸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p. 67.
요즘은 몸의 감각, 인체의 신비를 여실히 느끼고 있다.
내 뱃속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다른 생명체가 착실히 크기를 불려 나가고 있다는 점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몸으로 실감되지 않음에 불안했다.
유산의 경험을 겪고 나니 아이가 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던 것이다.
가끔 보는 초음파도 낯설지만, 그런 형태로라도 살아있음과 존재를 확인하는 것에 안도했다.
지금은 뱃속의 존재를 흐릿하지만 느낀다.
발로 찬다, 민다 이런 건 솔직히 모르겠고,
큰 물고기 같은 게 뱃속에서 꿀렁이는 느낌이다.
이 낯선 감각이 얼마나 큰 안도를 주는지...
몸의 감각만큼 생명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게 있을까.
한편으로 몸의 감각은 죽음과도 연결된다.
나는 정확히 말하면 죽음보다 고통이 더 두렵다.
조금은 엉뚱할지도 모르지만, 전쟁이 나서 폭탄이 떨어지면, 폭탄이 떨어질 것 같은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육체적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영혼이나 영만 남아있다면 살아있다고 하기 어렵다.
몸이 있을 때 우리는 삶과 죽음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정말로 몸의 감각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면, 죽음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이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뇌나 번뇌는 남겠지만
육체적 고통은 없을 테니.
그게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가 아닐까?
요가나 운동이 마음의 평화에 도움을 주는 이유도 몸의 감각에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다.
몸의 감각에 집중하면 어지럽게 이어지던 생각이 끊긴다.
다르게 말하면 몸의 감각이 우리의 생각을 흐리게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고,
몸의 감각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더 많은 생각을 명징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수련의 일종인 명상이나 기도도 결국 호흡과 같은 몸의 감각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해 결국 그 감각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 넘어선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깨달음이고 도이다.
눈을 감고 호흡을 잠시 들여다본다.
호흡을 들여다보다가, 마음도 들여다본다.
무언가 보일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