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2 : 길을 찾는 도덕경
도의 길을 잃은 자는 덕의 미덕에 의지하고,
덕을 잃은 자는 자애로움에 의지하며,
자애로움을 잃은 자는 올바름에 의지하고,
올바름을 잃은 자는 예의범절에 의지한다.
규범은 신뢰가 희박해질 때 생겨나니, 이는 곧 혼란의 시작이다.
-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p. 123.
도덕경이 어려운 이유의 첫째는 일반적인 가치관에서 옳다고 여기는 단어들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한 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문 능력의 부족으로 원문이 아닌 번역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원전에서 말하는 단어가 정확하게 번역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고전들은 사람들이 원문을 찾아서 직접 해석해 가며 읽게 되는 것 같다.
오늘 구절을 읽으면서 위의 두 가지를 강하게 느꼈다.
오늘은 새로운 챕터로 앞에까지의 내용이 '도'에 대한 이야기라면,
여기서부터는 '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그런데 읽어보면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덕'이 여기서는 딱히 긍정적 단어로 쓰인 것 같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자애로움, 올바름, 예의범절, 규범'같은 일상을 유지하게 해주는 기본 도덕률들 모두 '도의 길을 잃었기 때문에 ' 의지한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규범'이 오히려 '혼란'의 시작이라니...
모두가 '도'를 깨닫고 있는 이상적 상황에서는 세상에 있는 많은 규칙들이 필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규칙들이 우리를 더 옭아매고 괴롭게 하고 있는 주범일지도 모른다.
자애롭고, 올바르고, 규범을 지키기 위해, 그것들이 가지는 모순 속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꽤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저 가치들 모두 어쩌면 상대적이다.
자애롭기 위해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징벌이 되고, 올바르기 위한 행동이 어긋난 신념일 수 있으며, 규범과 규범 사이에는 수많은 구멍이 있으니 말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말 나쁜가.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종교의 자애로 용서받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가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올바름에 대한 신념으로 저질렀다고 할 때 우리는 용납가능한가.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공격한 대상을 죽였을 때 그것은 나의 잘못인가 그의 잘못인가.
그의 잘못이라고 할지라도 나에게 일말의 잘못이 없는가?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정말 그게 나의 잘못이 맞는가?
등등...
어쩌면 그 좋은 도덕률의 단어들을 오용한 예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오용이라고 판단할 자격이 나에게 정말로 있는가?
자연에서의 약육강식,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살해는 괜찮고 인간 간의 살해만 나쁜가.
자연에 따르는 것이 '도'라면 약육강식이 답인가?
끊임없는 질문을 따라가다가. 결국 그 답 역시 사람마다 다른 것인가에 다다른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절대적 '도'의 답이 가능한가.
모두가 같은 길로 간다면 그것이 정말 '길'이도 '도'인가.
내가 알고 있는 도덕률을 지키는 것 역시 어쩌면 자기만족과 비교 우위를 느끼려는 졸렬한 생각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다른다.
이러다가 세상에 대한 회의주의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오늘도 역시 답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여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