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흠

느리게 읽기 2 : 길을 찾는 도덕경

by 예그림
가장 완벽한 것은 흠이 있어 보이지만 절대 다함이 없다.
가장 충만한 것은 텅 비어 보이지만 절대 비워지지 않는다.
가장 곧은길은 이리저리 구불구불해 보인다.
가장 뛰어난 기술은 다듬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가장 훌륭한 연설가의 말은 평범하게 들린다.
고요함은 들썩임을 이기고, 차분함은 맹렬함을 이긴다.
평온함이 우주를 다스린다.
-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p. 134.


완벽주의자, 통제주의자.

꽤나 나를 잘 설명하는 말이고, 그 말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그만큼 내가 노력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완벽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완벽주의자, 통제주의자이다.

그것을 시도해 보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주의자나 통제주의자에게 완벽하려고 하지 않기, 통제하려고 하지 않기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완벽하지 못하고, 통제할 수 없더라도 그것을 해내려고 노력한 것이 자신이니까.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완벽주의와 통제주의를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첫 단계는

그리고 오늘 챕터의 제목이기도 하고, 책 챕터의 제목이기도 한 '완벽한 흠'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내가 완벽하고 통제하고 싶은 100가지 중 1가지에 내가 의도한 흠을 만들어 보는 것.

그리고 그 흠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아니, 오히려 그 흠 덕분에 더 좋아진다는 것을 경험하고 체득하는 것.


그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내가 만들었던 '완벽한 흠'들과

삶에서 주어지는 흠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 두 번째였다.

자로 재고 싶은 나의 선들 대신 나의 흠과 세상의 흠이 맞닿는 것을 느낄 때,

흠이라고 생각했던 그 선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목적지에 닿는 그 감각.

어쩌면 내가 '도'의 한 조각이나마 엿본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확한 어느 장면을 영화처럼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맞물림은 서서히 이어졌다.


지금은 내 삶의 흠들을 바라볼 수 있다.

지우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지울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저 그 흠들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본다.

짧은 흠은 상처와 망침으로 보이지만, 흠들의 연결은 내가 그으려던 선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선을 그린다.


삶에서 내가 겪었던 얼마 되지 않는 굴곡들이

오히려 나를 더 성숙하고 아름답고 완성되게 만들어 간다는 것을 안다.

완벽 대신 완성.


몇 천년, 몇 만년을 이어오는 자연의 풍경은 의도하여 완성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장면 역시 '완성'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삶도 같지 않을까?


'완성'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분명 무언가가 쌓이고 있다.

그리고 그 쌓임은 삶의 추가되어 나를 덜 흔들리게 만들어준다.

무게 중심이 잡혀있는 오뚝이처럼, 휙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도록.


중심은 요란하게, 들썩이며 쌓이지 않는다.

조용하게, 차분하게, 평온하게 쌓인다.


시작은 완벽한 흠 하나이다.

그 흠들이 선을 이루고, 그 선들이 중심을 만든다.

결국 모든 답은 내 마음의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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