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록 - 아우렐리우스
한 번에 꾸준히 읽다가는 너무 졸려서 포기했지만, 심란할 때 불쑥 아무쪽이나 펼쳐보는 책이 저에게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자성록)입니다. 일전에도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타로 점을 보듯이 마음을 담아 내 문제를 고민하며 책을 펼쳐보면, 귀신같이 그 상황에 필요한 답이 나오는 신묘한 책이지요.
오늘도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마음이 불안해서 책이든 글이든 손에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내일이 제가 출제한 과목의 시험이거든요. 1년에 4번 시험을 출제하고 보는데도, 제가 출제한 시험 전날에는 괜히 불안한 마음에 혹시나 오류가 있을까 시험지를 몇 번이고 펼쳐서 들여다보며 잠을 설칩니다.
그런데 국어라는 과목이 참 웃긴 게 우리가 모두 원어민이다보니 3번 읽으면 맞는 말인 것 같다가, 3번 더 읽으면 틀린 말 같기도 하고. 며칠 쉬었다가 다시 보면 이렇게도 해석되나 싶기도 하며 불안하게 마련입니다. 몇 번을 읽어도 명확한 정답이 나오도록 문제를 출제하기 위해 시험 전까지 몇 번이고 시험 문제를 고치고, 고치다가 틀릴까봐 불안해 하고, 다시 읽어보기의 반복이지요.
시험 문제를 이미 5번 이상 풀어보았음에도 생기는 이 불안은 시험이 별 문제 없이 종료 되어야만 끝나는 막연한 불안임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데, 머리로 안다고 해서 불안이 다 조절되는 것은 아니니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시 명상록(자성록)을 펴들었습니다.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구절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죠. 그렇게 오늘의 필사 구절을 만났습니다.
"영혼이란 어떤 점에서 구체(球體)와 같은 모습이다.
한 측면으로 뻗어나가지도 않고 자신 안으로 오그라들지도 않으며, 분산되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앉는 한,
영혼은 불빛처럼 밝아져서 만물의 진리는 물론 자신 안의 진리 또한 비추게 된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中
이 구절이 와닿은 이유는 국어 시험 문제 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이 첫 눈에 들어왔을 때에는 1번 해석으로 읽었는데, 천천히 필사를 하며 다시 세 번 더 읽어보니 두 번째 해석이 정답인 것 같더라구요... 정답은 없고 해답만 있는 문제일지 모르지만, 이게 제 지금 상황과 마음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석 1). 처음에는 인간은 구체와 같이 무엇을 하든 완벽하다고 읽었습니다. 뻗어나가도, 오그라들지 않아도, 분산되지 않고, 가라앉지 않는. 그러므로 영혼은 불빛처럼 밝아져 진리를 비추게 된다고요. 무엇을 하든 괜찮으니 자신의 영혼의 완전성을 믿으라는 위로와 격려라고 생각해서 이 구절을 필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석 2) 그런데, 중간에 '한,'이라는 한정의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을 필사하면서 깨달았습니다. 한 측면으로 뻗어나가지도 않고, 자신 안으로 오그라들지도 않고, 분산되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는 '한'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즉, 다시 읽으니 한 측면으로 뻗어나가도 안 되고, 자신 안으로 오그라들어도 안 되고, 분산되어도 안 되고 가라 앉아도 안 된다. 그래야만 영혼이 구체와 같이 완전하다는 것으로 읽히더라구요. 이렇게 안되는 게 많으면 영혼은 구체와같이 완전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하며 불쑥 반발심이 올라왔습니다.
필사를 하고 다시 차분하게 세 번 더 읽어보니 영혼을 밝혀서 만물과 자신 안의 진리를 비추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수양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 측면으로만 뻗어나가서 원이 삐죽 튀어나오지 않게, 원이 안으로 오그라들어서 찌그러지지 않게, 원이 분산되어서 흩어져 버리거나, 가라앉아서 사라지지 않게. 영혼의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한다는 뜻 아닐까요? 마음과 영혼의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표현하는 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소위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고 하는 황제였음에도, 치열하게 영혼에 대해 고민하고 글을 남겼습니다. 어떤 점이 그의 영혼을 흔들리게 했고 어둡게 했기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걸까요?
결국 첫 문장으로 돌아오니 글이 다르게 보입니다.
영혼이란 '어떤 점에서' 구체와 같은 모습이다. 번역의 영역도 있긴 하겠지만 영혼이 '어떤 점에서' 구체와 같은 모습이라면, 또 다른 어떤 점에서는 영혼이 울퉁불퉁하고 찌그러지고 흐려진 어떤 형상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그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을 예쁜 원으로 만들고 싶은 게 우리의 마음일 것 같아요.
'원을 하나 그려보세요.'하고 종이를 주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동그랗고 예쁜 원을 그리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울퉁불퉁하고 찌그러진 형상으로 그리려고 하는 사람은 잘 없겠지요.
어린 아이들이 그리는 원이 어쩔 수 없이 울퉁불퉁하고 찌그러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둥근 원을 잘 그리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아이가 처음에 둥근 원을 잘 못 그린다고 우리가 혼내지 않고 함께 연습해주듯이, 제 영혼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조금 보듬어주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쁜 원을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 역시, 자기 자신을 성숙하고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은 모두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글을 쓰면서도 울퉁불퉁한 원을 하나 더 그려낸 느낌입니다. 동그랗고 예쁜 원형의 영혼을 가지는 그 날까지. 조금 더 원을 그려봐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그러고보니 오늘 그린 삐뚤빼뚤한 원도 꽤나 마음에 드네요..
다들 자신만의 원을 그리는 하루가 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