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밤 - 은유
나는 스스로를 '통제주의자'라고 잘 설명하곤 한다. 주변의 많은 것들을 통제하고 싶어 하고, 꼼꼼하게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통제희망주의자'일지도 모른다. 삶은 통제와 계획으로 실행되지 않으니까. 목표가 없이 부유하고 떠도는 것도 문제지만, 유연하지 않은 통제와 계획은 스스로를 괴롭힌다.
삶은 항상 나를 쉽지 않은 길로 이끌지만, 그 안에서도 내가 나를 제일 괴롭게 할 때는 단연 내 계획과 통제에서 어긋났을 때이다. 파워 J(계획형 인간)로서 20대 후반~30대 초반, 어쩌면 현재까지 내 삶은 모두 '통제'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제하고 싶었으나 실패했고, 조금만 통제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역시 실패했으며, 이제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수긍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 수긍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내가 찾아가고 있는 답이 오늘의 필사 글에 잘 담겨있는 것 같다. 아직 완벽한 해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찾아가고 있는 답 중의 하나가 '친절'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 관계에서의 친절한 사람이고 남에게 친절한 것의 의미가 아니라, 삶 자체에 친절한 것, 어떤 문제든 친절하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응하는 것. 그게 내가 찾아가는 '친절'이다.
글에서는 "고난은 피할 수 없지만 친절은 선택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고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고, 친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기에 괴로웠다.
놀랍게도 나의 삶을 유지하고 버티기 위해, "나의 감정과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친절"이 남에게도 확장됨을 똑같이 느꼈다. 이전에 글로도 쓴 적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의 하나가, "친절하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제각각 나는 알지 못하는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라는 문구이다.
나 역시 전쟁 중이고 그 역시 전쟁 중이라면 우리는 모두 전우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전쟁은 각자만의 전쟁이기 때문에, 서로를 적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삶의 무게와 싸우는 중일뿐. 그때 우리가 서로를 버티게 하고 자신을 버티게 하는 것은 '친절' 뿐이다.
나는 '공감'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데, T(사고형)라서 그런 게 아니라, 공감하면 감정뿐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힘듦이 그에게 옮겨가는 것 같은 미안함이 들기도 한다.
나의 일에 감정을 같이 해주는 것도 너무나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실제 나를 살리는 것은 '힘들겠구나'라는 마음의 공감보다는 실제 나에게 닿는 작은 호의와 친절이었다. 당연히 마음의 공감이 호의와 친절의 모든 시작이라는 것도 맞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며, 힘든 마음에 공감하는 것과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공감이 필요하지만,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공감받고 싶어 하면서도 공감을 잘 받지 못하는 사람 투성이니까. 그럴 때,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친절'같다. 공감까지는 아니어도 존중하고 존중받는 느낌을 많이 경험하고 배우는 것.
내 기준에서 '친절'은 '존중'과 유사하다. 나를 존중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삶 자체를 존중하는 것. 그게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을 이겨내고 버티는 힘인 것 같다.
필사글에서도 그렇지만 가장 핵심은 친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친절을 선택하는 용기'뿐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나는 친절을 선택했다.
친절하자.
누구나 각자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