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밤 - 은유
우리는 삶의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의 서사에 감동하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현재의 삶을 이룩한 사람. 그가 대단하여 닮고 싶기도 하면서도, 나라면 저렇게 못하겠다는 질투나 부러움...
가끔은 이상한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내 인생은 너무 평온했던 게 아닌가. 나도 나름의 내 삶에 지워진 짐을 들고 열심히 걸어왔지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기에는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이상한 열등감. 성장과 극복의 서사에 고난이 필수라면, 더 큰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 건가 하는 요상한 고민.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클래스의 우수 사례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등을 다룬 글을 볼 때에도 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글쓰기 과정을 거쳐 가정환경의 어려움, 부모님의 이혼, 폭력의 경험, 성적 정체감 등의 개인적 경험을 진솔하게 고백하며 치유되었다는 많은 경험담을 보면 왠지 그런 경험이 없이 글쓰기 클래스에 참여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쓴 소소한 글이나 고민들도 당연히 의미 있고, 좋은 글이 될 거라고 해주시겠지만, 아무리 애쓰고 공부해도 반에서 10등 안에 못 들 것을 아니까 시작하기 싫은 이상한 기분.
심지어 일상의 따뜻함이나 행복함의 글을 쓸 자신도 없는 걸...
이런 생각을 한 문장으로 깨우쳐 준 게 오늘의 필사 문구 같다.
불쌍하고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아예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삶을 짓누르는 바윗덩이 같은 압박감이 아니라 신발 속에 든 쌀알 같은 거슬림도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감정에서 풀려날 수도 있겠지요.
해방의 밤 - 은유 작가 p.235
"나는 불쌍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지만, 아무렇지 않지도 않아. 사소해 보이는 것도 사소하지만은 않아.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해. "라는 깨달음.
오늘의 사소한 행복도, 고난도 모두 다 나를 이루는 거니까.
그것을 잘 알아나가는 게 내가 쓰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사가 아닌 일상의 글을 쓰는 것을 망설였던 것도 이런 게 소재가 되나 싶어서였는데, 그냥 그게 내 삶이라면 나는 내 삶을 기록하면 될 것 같다. 누가 읽지 않더라도 내 삶에 충실할 수 있고, 누군가는 그 사소함에 공감할 테니까.
남들은 이미 알고 있던 걸 늦게 깨달았나 싶기도 하지만,
내가 쓰면 내 글이다. 꾸준히 내 길을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