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산다는 것만으로도

필사는 도끼다 - 김지수

by 예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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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는 도끼다 -김지수



원래 제목은 '살다가 죽는 것만으로도'였지만, 더 정확히는 자신의 생을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메시지 같아서 내 글에서는 제목을 바꾸었다. 죽음도, 삶도, 그 안에서의 의미까지도, 어차피 우리는 우주와 세계, 시간의 흐름 속 일부이므로 존재하고,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읽혔다.


삶의 의미를 중시하는 나로서는 예전에 이런 글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의미 없이 살아도 된다고? '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나 열심히 사는 나나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세상의 흐름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사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흐르는 대로 흘러가도 된다고,

그냥 삶을 살아내고 존재만 해도 된다는 위로였는데, 젊은 패기(?)에는 그게 위로로 와닿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존재만으로 의미 있다는 그 말이 무엇인지.



지난 2월. 짧지만 7주간 함께 했던 아이를 보내주었다. 인공수정 시술을 하며 안달복달 기다리고, 왜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생긴 아이. 인공수정 시술 직후에 독감에 심하게 걸려서 어차피 안될 거라고 포기했던 때 아이가 생겼었다. 작고 미약하지만 며칠이나마 심장 소리도 들려주었던 아이.

사실 아직도 처음 심장소리를 들었던 게 생각이 날 정도이고, 다시 아이가 생긴다고 해도 '튼실이'라는 아명은 다시 지어주지 못할 것 같다. 항상 대문자 T(사고형)라고 주장해 왔는데, 그 7주간은 어찌나 감정적이었는지.. 몇십 년 치의 감정을 다 쓴 거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나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예전에 나라면, 정말 7주간 존재만 했다 떠나간 튼실이는 아무 의미 없을 것이다.

어쩌면 힘겹지 않기 위해서 얼른 잊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 7주간 튼실이는 내 세계에 너무 큰 무언가를 남겼고,

그건 아마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도 묻어날 것이다.



'아이도 없는 선생님이 뭘 아냐고.'

신규교사일 때 그 말을 듣고 정말 억울했지만, 뭘 몰랐던 건 사실이라는 걸 이제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분이 나에게 그 말을 할 권리는 없었지만.)


전에는 수업 중에 바라보면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느끼던 아이들이, 그냥 이렇게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과 의미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T로서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3월에는 열심히 글을 읽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감상적이 되기도 했다.

'그래, 건강히 심장 뛰고 튼튼하게 잘 지내고 있으면 되었지, 공부가 뭐가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어떤 행동도 조금 더 너그럽고 소중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앞으로 많은 아이들을 만날 내 마음 깊은 곳을 바꾸어 놓았으니, 튼실이 도 세상에 기여하고 무언가를 남긴 게 아닐까?




'넓은 흐름 속에 나를 두면 허무나 상실감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나는, 우리는, 세상은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그것은 작은 물결일 뿐.

넓은 흐름 속을 잘 흘러가고 있다.



이 글을 다듬는 지금은 7월이다.

나는 그동안 보이지 않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넓은 흐름 속에서 잘 흘러가며, 꽤나 잘 지내왔다.

하지만 이 글을 다듬으면서는 다시 또 눈물이 불쑥 난다.

불쑥 나는 눈물을 가만히 바라본다.

잘 흘러왔고, 지금 잠깐 여기 머무른다.


머물러서 추억하고 다시 잘 흘러간다.

생을 산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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