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잘 내는 법

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by 예그림

오늘 이야기는 '화'에 대한 것이다. 부제는 '싸우기도 싫고 참을 수도 없는 당신에게'이다.

참 공감 간다. 싸우기는 싫은데 무작정 참을 수도 없을 때, 화에 휩쓸리지 않고 화를 잘 내는 법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화를 낼 때 '실효성'있게 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감정이 올라올 때에는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이성적으로 정리해 전달하는 것이 작가님의 화를 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소개되었다.



나의 기준에서 화를 낸다는 것은 순간의 충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정서가 '실제로' 내면에서 밖으로 내보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갈등 해결, 상황 종결, 관계 개선, 마음의 평온 같이 원하는 결과가 '실효적'으로 주어질 수 있는 방식, '화를 내보내는' 기능을 훌륭히 수행하는 방식이 내가 화를 내는 방식이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209.


책에서 화를 '내보낸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참 적절한 것 같다. 화를 '낸다'는 휩쓸린 느낌이지만, 화를 '내보낸다'는 조금 더 다듬어서 내놓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쌓아놓지 않는 것이다. 화를 무조건 누르고 참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심리학에서 공인된 사실에 가깝다. 화를 쌓지도 않고, 내지도 않고, '내보내는 것'이 답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 사용 감정이 '슬픔'이기 때문에, 화가 나면 축 처지고, 이런 부당함을 겪으며 화도 제대로 못 내는 나 자신에게 슬픔을 느낀다. 주 감정이 '슬픔'인 사람들은 화를 참게 되기가 쉽다. 그래서 나도 버릇처럼 그 자리에서는 화를 참을 때가 솔직히 많은데, 그래도 그 뒤에 어떤 형태로라도 화를 내보내려고 한다.

책에서 제시하듯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하며 기분 전환을 하는 형태로 화를 가라앉히고 내보내기도 하고, 정말 못 참겠는 부분은 행정적 대응을 하거나, 아니면 뒷북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직접 대상에게 이야기하기도 하는 편이다.




나의 대응 방식도 나름 괜찮은 대응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누구에게 배웠나 생각해 보니 우리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중, 고등학교 교사로 30년 넘게 일하시다가 재작년에 정년퇴임을 하셨는데, 재임 기간 대부분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으로 통했다. 우리가 어릴 때 익숙했던 매를 드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무서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효과적으로 혼내셨던 것 같다.

초임 교사이던 시절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 고민하던 내게 해주신 말씀은 아직도 나의 학생 지도 기준으로 남아있다. 아마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아이를 키우는 기준도 될 것 같다.


"아이를 지도할 때에는 화를 내면 안 된다. 혼을 내야 한다."


'화'와 '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단어이다. 어머니가 말한 '화'는 초점이 '감정'과 '나'에 있다. 감정을 발산하고 쏟아내는 것은 아이를 위한 것도 아니고, 단지 내 감정의 표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은 초점이 '지도'에 있고 '아이'에게 있다. 내 감정이 아니라 아이의 잘못된 행동이나 교정해야 하는 행동이 초점인 것이다. 내 감정인 '화'에 휩쓸리면, 교육적인 지도로 '혼'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씀도 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참 와닿았다.


처음 아이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잘 되지 않는다고 하셨고 잘 되지도 않았지만, 9년 차 교사인 지금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아이들이 나를 화나게 할 때도 물론 있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 때문일 때도 있지만, 일전에도 글로 쓴 적 있는 나의 '감정 버튼'이 눌려서일 수도 있다. 그래서 화가 올라올 때에는 먼저 생각한다. 나의 '화'인지, '혼'을 내야 할 타이밍인지. 그리고 '화'라면 자기 성찰이 필요한 것이고, '혼'이라면 혼을 내야 할 타이밍이다.


엄마가 퇴임 직전 주변 선생님께 '혼내야 하는데 혼내는 좋은 멘트가 떠오르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말 역시 공감된다. '혼' 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무슨 말로 혼낼 것인가. 그 경계가 모호하면 '혼'과 '화'가 섞여버리거나, 아이와 말싸움을 하게 되어버린다.


나도 사실 좋은 멘트나 레퍼토리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차분함'을 유지하는 것 같다. 말싸움은 친구나 동등한 관계에서나 하는 것이고, 자녀와 부모님,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는 적절한 위계가 있어야 한다. 말싸움이나 화로 번져 동등한 관계로 내려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보다 나은 점은 좀 더 오래 살았다, 좀 더 참을 수 있다 정도가 아닐까. 청소년의 뇌는 충동에 약한 구조라고 하니, 우리가 아마 그 충동에 좀 덜 휩쓸릴지도 모른다.

여하튼. 나도 좋은 멘트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많지만, 적어도 소리를 지르거나 감정을 싣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의외로 그러면 아이들도 대들지 않는다. 감정이 맞부딪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혼냄을 무시해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싸움으로 번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복하다 보면 마음의 틈 어딘가 스며들겠지 하며 반복할 뿐이다.



또, 상담 선생님께도 화에 대해 배운 것이 있다. 상담 선생님은 화를 잘 삼키며 슬퍼하는 내게 화를 에너지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의 케이스에 불과하지만, 언니에게 맨날 지는 느낌이 들어 화가 난 내가 언니를 이겨보겠다고 시험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있다. (슬프지만 이기지 못했다.) 이겼다 졌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를 에너지로 전환하여 사용해 본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신 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누구에게나 화를 잘 '내보내는' 것은 어렵겠지만, 특히 화를 주 감정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벌컥 화를 내고 후회했던 상황들이 있다면, '나의 화'로부터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면 결국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급박하고 불쾌한 상황과 그로 인한 감정이 나를 홍수처럼 덮쳐오더라도 그에 대한 반응을 '선택한 자유'가 내게 있다는 역시 잊지 않으려 한다. (중략)

화가 났을 때 당신이 말과 행동을 선택한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순간적인 감정에 얼마나 어울리는지보다는 스스로를 소중히 할 수 있는 방향인지를 기준으로 삼기 바란다. 당신이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다줄 자동적이고 충동적인 반응 말고도,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지만 당신을 지켜줄 방법이 많다. 이를 통해 화가 나는 순간에도 당신이 당신의 최선인 모습으로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211~212.



책에서 설명하는 방식도, 어머니의 방식도, 상담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것도 머리로 이해가 어렵다기보다는 실천이 어렵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서도 어느 순간에는 '화'에 휩쓸리고 후회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중심은 확고하다.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사람들이 아는, 내가 아는 '나'가 아니라 충동에 휩쓸린 본능의 나를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어떤 순간이든 나는 나로서, 최선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고 싶다.

화를 흘려보내는 것이든, 내보내는 것이든,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든.

화에 휩쓸리지는 않는 '차분함'이 나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화'도 우리의 감정 중 하나이고, 화가 나지 않는 삶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그러니 화가 날 때 바로 화를 내지 않길.

담아두지도, 터트리지도 말고

'실효성'있는 방법으로 차분하게 화를 '내보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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