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지치고 피곤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 하루 속에 지키고 싶은 것들이 가득하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가 버거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그 버거움을 넘어서는 의미를 추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스스로가 그리는 미래를 위해 이 고됨을 나는 기꺼이 감내하고 싶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216.
오늘의 문구가 참 눈에 띄어서 맨 앞에 배치해 보았다. 이 챕터의 제목은 '감성이야말로 먹고사는 현실이다'인데, 감성적인 시간은 낭비도, 의미 없는 시간도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먹고사는 것 만으로 잘 산다고 느낄 수 없기에, 오히려 삶을 삶답게 만들어주는 시간이 감성적인 시간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이 글에 매우 공감할 것이다. 감성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상에서 감성을 누릴 시간을 조금이나마 가지며 마음의 평온을 느꼈으면 좋겠다.
앞에서 '누군가는'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나는 공감보다 성찰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T라서 감성을 누리는 것에 회의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요즘 내 하루가 '지치고 피곤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가 지치고 피곤하고 버겁지 않다. 일도 생각보다 가뿐하고, 마음이 힘든 부분도 특별히 없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산다.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어도 예전에는 하루 종일 곱씹을 일이라면, 지금은 그냥 흘려보내 버린다. 마음이 성장한 것이라고 위안하기도 하지만, 요새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 '무료함'이라면 이상한 것일까? 건방진 소리이긴 하지만 가끔은 좀 더 일이 많았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일이 익숙해지고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길 바라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 잘 처리하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되자, 또 너무 무료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참 우습기도 하다.
그런데 잘 곱씹어보면 정말로 일이 적은 것인지 모르겠다. 일의 양은 적지 않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까지는 아니지만, 수업 준비와 각종 행정 업무와 잡일들로 하루 종일 바쁘다. 의외로 여유 시간이라고 느끼는 것은 점심 먹고 20분 정도의 산책과, 짬이 날 때 20분 내외의 믹스 커피 타임 정도이다. 그 외에 8시간을 꽉 채워서 일하고 있다. 개학한 지 한 3주는 넘은 것 같은데, 이제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다. 계속 학교를 다니던 사람처럼 출근과 퇴근이 너무 자연스럽다.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하다가 인용구가 눈에 들어왔다. 인용구를 뒤집어보면 나는 '지키고 싶고, 의미를 추구하는 것도 없어서' 피곤하지도 버겁지도 않은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닐까.
내가 요새 그래도 가장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글쓰기이다. 내 생각을 연마하고, 표현하고, 성장한다. 그런데 요즘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무엇을 추구하며 글을 쓰고 있는지 혼란이 올 때가 있다.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가? 에 대해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열정 가득하던 초임 때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게 일을 잘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똑같이 답하기가 어렵다.
글의 결론을 어떻게 내야 할지 고심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오늘 읽은 글은 좋은 글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좋은 책이나 글은 답을 주기도 하지만, 더 좋은 책이나 글은 '질문'을 하게 한다. 오늘은 책을 읽으며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떠올렸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중요한 가치나 의미에 닿았다. 답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그냥 생각이나 마음이 고인 것이 아니라 수면이 흔들리고 저 밑바닥에서 무언가 보글거렸다.
평생 찾아갈 답이니까 오늘은 충분히 흔들리고, 안쪽에서 끓어보려 한다. 고인 물, 흐린 물이 되지 않도록 다시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하는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고민도 '전념'의 일부인 것 같다. 고됨이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의미나 가치를 추구하는 것.
나는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