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오늘 챕터는 '전념'의 마지막 챕터로 작가님이 자신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의 소중한 것들을 얻기 위함이라는 의미가 있다면 고된 일상도 충실히 살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이야기의 반복과 변주이지만, 전념 파트의 마지막 문장이 울림을 준다.
전념은 나의 하루를 당장은 편안하지만 공허하고 두려운 것들 대신, 때로 불편하고 귀찮지만 소중한 것들, 꾸준히 이어갈 만한 가치 있는 것들로 채워준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226.
'당장은 편안하지만 공허하고 두려운 하루'라는 첫 구절을 보는 순간 지금 가르치는 고3 친구들도, 그리고 나의 요즘 일상도 생각났다.
오늘은 올해 치러지는 수능 D-83일이다. 10년 전만 해도 수능이 참 중요했지만, 요새는 수능의 중요도가 꽤나 줄어들었다. 내가 지금 가르치는 고3 학생들 중에도 한 반에 10명에서 많으면 절반까지는 본인의 대학 입시에 수능 점수가 아예 필요하지 않다. 한 교실 안에 수능 공부를 하는 친구 반, 공부하지 않는 친구 반 정도가 섞여있다. 심지어 3학년 2학기 성적은 올해 대입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 3학년 2학기에는 내신 준비도 따로 필요 없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참 순하고 착하다. 공부하는 친구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고, 공부가 필요하지 않은 친구들은 조용히 패드나 노트북으로 취미 활동을 하거나 잠을 잔다. 무엇이 되었든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되었다 싶다가도 씁쓸하다.
나의 고3 때, 그때는 수능을 다 똑같이 보고, 모두에게 비슷한 자유가 주어졌었다. 나는 수능 이후에 '댄스 학원'을 다닌 것만 기억난다. 월수금 댄스화를 들고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인 댄스 학원을 가는 매일이 두근거렸다. 춤을 잘 못 췄고 여전히 못 추지만,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춤을 배우고 있다는 것만으로 신났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 배운 춤을 따라 출수는 없지만, 학원 공간의 냄새와 분위기, 그때 배웠던 노래는 모두 기억할 정도이다. 학교도 매일 나갔으니 무언가를 했겠지만, 사실 학교에서 했던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 고3 수능 이후의 기억은 '춤'이다.
내가 임용을 5 수하는 동안, 5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진짜 제대로 공부했다고 생각한 마지막 2년을 제외하고, 처음 3년은 기억이 잘 안 난다. 모든 일상과 경험이 기억이 안 난다기보다, 수험생이니 '공부'가 포커싱일 텐데, 공부에 대한 기억이 없다. 분명히 나는 하루 4~5시간은 공부를 했었다. 그런데 어디서 공부했고, 무엇을 공부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학습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열심히 했던 그 과정이나 장소나 책이나 어떤 파트를 집중했었는지 등등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이렇게 기억에 남는 게 없다면 그때는 의미 있게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현재로 돌아와 보면 아이들은 대부분 패드를 보고 있다. 공부하는 친구들은 인터넷 강의를 보기도 하고, 공부가 필요하지 않은 친구들은 유튜브를 본다. 사실 두 학생 집단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대다수가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유튜브도 잘 보면 좋은 콘텐츠가 있기도 하지만, 특히 쇼츠를 포함한 콘텐츠들은 우리의 시간을 잡아먹는다. 다 보고 나면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하는 것. 이거야 말로 '당장은 편안하지만 공허하고 두려운 것'의 대표주자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현재 공부가 필요 없는 친구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든 의미 있는 것을 한 가지라도 하라'는 말이었다. 공부해라, 책 읽어라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되든 고3을 회상할 때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남기라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정주행을 하더라도, 그냥 시간을 때우는 것과 내가 의미와 가치를 두고 하는 것은 다르다. 내 고3 수능 후가 '댄스'로 떠오르듯이, 아이들에게도 무엇인가가 남았으면 좋겠다. '정말 잘 쉬었다', '진짜 끝내주게 놀았다'라도 말할 수 있도록...
공부하는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한다. 당연히 쉴 수 있고, 딴짓할 수 있지만 거기에 지지 말라고.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꾸준한 사람이 가장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일수록 잠깐 딴짓을 하고도 스스로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해한다. 그러니까 더욱 이야기해 주고 싶다. 휴식도 필요한 시간이니 당당하게 쉬고, 집중할 때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꾸준하게 하면 된다고.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나에게로도 돌아온다. 내가 현재 의미를 두는 것이 무엇인가..
지난 글들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낙이 없고, 무료하다는 일상의 혼란을 표현해 왔다. 어렵게 고민하고 고민해서 생각에 전념한다는 답을 억지로 내보기도 했지만, 글을 올리고 나서도 계속 찜찜함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전념하고 있는 것은 '기다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산 후에 다시 임신을 준비하며 아이를 기다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일반적 정의처럼 어떤 행위에 몰입하는 의미의 전념이 아니다. 고되고 불편하더라도 나의 에너지와 마음과 일상을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꾸준히 보낸다는 의미에서 나는 '아이를 기다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 맞다.
처음 임신 준비를 할 때에는 좋다는 것들을 찾아 먹어보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안 좋다는 것을 다 참으며, 주사를 맞고 약을 매일 먹는 일상에 스트레스받았다. 하지만 요즘은 내 일상은 꾸준히 유지하되 아직 오지 않은 아이에게 마음과 에너지를 충분히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기다림'이라는 것을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전념하고 있다고 쓰기보다는 '아이를 기다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기다림에 쏟고 있어서, 일상이 좀 무료하고 흐릿했는지도 모르겠다. '노력'이라고 표현한다면 무엇을 막 하면서 바쁘겠지만, '기다림'이라는 것은 원래 느릿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 무언가 마음과 에너지를 잔뜩 흘려보내서 원기옥처럼 모으고 있는 느낌도 든다. 터트리지 않고 부드럽고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서 아이에게 전하고 싶다.
내가 '기다림'에 전념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료한 일상도 그냥 공허한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것을 만나고 성숙함을 채우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모든 가치 있는 것은 단발성의 결과로 오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이'가 맞지만, 아이 자체가 태어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할 삶과 일상, 성장 과정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다림에도, 실망에도, 꾸준함에도, 초연함에도 익숙해야 져야 할 것이다. 익숙해지는 과정을 연습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조금 편안하다.
당장의 무언가가 보이지 않더라도 크게 보고 멀리 보는 것. 그리고 그 먼 곳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
나는 지금에서야 제대로 전념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