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요즘 내 삶은 좋게 표현하면 '불행하지 않은 삶'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무료한 삶'이다. 이 책에 끌린 이유 자체가 '불행하지 않은 삶'을 쫓아서 꽤나 불행하지 않아 졌는데, 행복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전의 챕터에서 '불행하지 않은 삶'은 '행복한 삶'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관성처럼 몇 년간 이어져오고 심지어 열심히 노력해 오던 '불행하지 않기'라는 목표를 금방 다른 것으로 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또한 '불행하지 않기'의 문제는 불행하지 않기 위해 많은 것들에 벽을 세우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위협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은 세상과의 접점이 없는 곳이다. 세상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사람과의 접촉도 줄이면 감염의 위협도, 인간관계로 인해 주어지는 존재에 대한 위협도 적을 것이다. 나 역시 '불행하지 않기'의 첫 시작은 세상과의 접점을 줄여나가는 것이었다.
인간관계는 원래도 좁았지만, 만남을 줄였다. 그들이 싫어진 것도,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나, 상처 입고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마음으로는 어느 모임에 가도 마음 편할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공격하지 않을까 항상 날 서있고, 안전한 사람들에게는 나의 상처를 꺼내 잔뜩 위로받고 집에 오면서 '내 이야기만 너무 했나? 혹시 내 상처가 본의 아니게 그들에게 옮겨간 것은 아닐까?'하고 후회하는 일상. 성숙한 척하려고 '거리를 두었다'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회피한 것이다. 내 마음을 보호하려고.
도전도 줄였다. 클라이밍 도전하기, 동호회 뮤지컬 공연 하기, 테니스나 배드민턴 배우기, 요리 학원 다녀보기 등. 작은 흥미로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을 줄였다.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처음 시작하니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 그 당연한 실패도 버티기 조금 버거웠다.
진짜 힘들 때 줄여둔 것이, '불행하지 않기'가 목표가 되자 더 필요 없어졌다.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좌절하거나 실망할 일도 없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삶이 무료해졌다.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생각', '원하는 것을 하려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원하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불편한 마음에서 벗어나려 하는 강박을 부른다. 그렇게 우리는 부담감을 이유로 소중한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하거나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도전을 회피한다. 어떻게 해도 괜찮아지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든 편하게 하려는 본능은, 결국 우리를 소중한 삶의 순간들에서 물러나게 한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 이두형. p.200.
불편한 마음을 없애는 것이 중심이라면, 너무 많은 자극과 고통에 예민하게 곤두서있다면. 잠시동안 삶의 순간들에서 물러나있는 것도 방법이다. 너무 많이 주어지는 자극을 차단하는 것만으로 내가 나로 돌아올 수 있는 잠깐의 에너지를 주니까.
그때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이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사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때라면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수용한다. 다만 인생의 목표를 바꾸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혹자는 인생의 가치를 꼭 '행복'에 둘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내 삶의 목표나 가치 역시 행복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목표를 '불행하지 않기'에 두는 것은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까지도 '차단'해버린다.
이번 장(축)인 '전념'이 '삶의 고됨을 기꺼이 감수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했다. '고됨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지 않을 수도 없고,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 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고됨을 감수'하겠다고 인정하면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제일 처음 생각한 것이 '아이'였다. 결혼한 지 8년 차이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각자의 삶이 버거워서 아이를 낳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삶을 지탱하는 것도 벅차 새로운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각자의 삶의 과제를 해나가고, 더 어른이 되면서는 그것이 답이 아님을 알았다. 물론 나이가 들며 직장에서 직급도 올라가서 책임과 의무가 더 커지고, 부모님의 보호를 받는 자녀보다 부모님을 부양하는 자녀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삶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 짐이 가벼워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서는, 준비가 된 후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준비는 아마 평생 되지 않을 테니까.
물론 아이를 한 번 유산하고 다시 아이를 준비하는 지금은, 좀 더 일찍 마음을 먹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가 있다. 하지만 또다시 마음을 다 잡는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그때로 돌아가도 더 젊을 때 아이를 낳겠다는 마음을 먹지는 못했을 거라고. 중요한 것은 지금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또 생각한다. 아이가 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아쉬움이 최대한 남지 않게 할 수 있는 만큼을 해보자고. 그냥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가보는 거라고. 뒤에 가면 아마 또 돌아보고 후회를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 방향으로 뚜벅뚜벅 가보겠다고.
오늘 책에서 여러 번 나오는 단어가 '용기'와 '나아가다'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힘듦을 감수하려는 '용기'를 가지고 그것을 버티며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불행하지 않은 삶을 바라던 내게 가장 없던 것이 '용기'였던 것 같다. '나아가다'라는 단어도 멀리 가고, 많이 가는 것보다 한 발짝 한 발짝씩 내딛는 것에 가깝게 느껴진다. 한 발짝 한 발짝씩 가보는 것. 그리고 도저히 발이 안 떨어질 때에는 뒤로 돌거나 뒷걸음질 치기보다는 이 자리에서 버티기라도 하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이제는 뒤로 가서 방어하기보다 앞에서 지키고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과 글쓰기가 나에게 그 용기를 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