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벌써 다섯 번째 장(축)이 되었다. 이제 '수용전념 심리학'에서의 '전념'파트에 들어선 것이다. 앞에서의 수용이 과거에 대한 이해와 나 자신에 대한 받아들임이라면, '전념'은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파트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전념'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186.
'삶의 고됨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수용에 기반해야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인 전념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삶의 고됨 없이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것은 운전면허 없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오늘 읽은 챕터부터는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것 같다.
오늘 읽은 챕터는 '불안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이다. '불안'은 심리학의 오랜 화두인데, '불안'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 보여주어서 오늘도 역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인사이드 아웃 1이 나의 인생영화임에도, 나는 아직 인사이드아웃 2를 보지 못했다. 인사이드 아웃 2의 핵심 주인공은 '불안이'라는 것을 알고,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은 이중 감정을 느꼈다.
우리는 '불안'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직면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문제는 해야 하는 것과 내가 실제로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을 대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불안을 대면하자마자 바로 직면하고 불안을 탐색하는 게 가능할까? 오히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감정이 일부 결여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이러한 '불안'을 잘 다루고 불안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불안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의심과 검토는 다가올 위기를 예측하고 대비하거나 현재의 문제를 수정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 이두형. p. 191.
첫 번째 포인트는 불안 자체의 순기능이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불안을 나쁜 것으로만 바라보았는데, 예측해 보고 대비해 보고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기능도 생각해 보면 있는 것 같다. 앞에서 말했듯이 예측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언가에 대비해 보고 고민해 보는 자체는 우리를 성장하게 하기 때문이다.
불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관점이 있다.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행하는 일, 오늘 보내는 일상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라는 이유에 어울리는지, 혹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하루에 알맞아서'라는 이유에 어울리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만약 전자라면 불안은 우리를 끊임없이 압박해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일도 못하게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무리하며 기력이 소진되게 할 것이다. 반대로 후자라면 불안은 내가 시도하고자 하는 일을 신중히 검토하고 이를 위해 좀 더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슴을 죄어오는 불편한 '느낌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이어지는 삶의 방향, 실제로 발행하는 '행동'이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 이두형. p. 194.
두 번째 포인트는 불안한 느낌 자체가 아니라 '행동'과 삶의 방향을 살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현재 느끼는 불안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각자 불안의 키워드가 있을 것이다. 비합리적 사고인 것을 알면서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를 불안해한다든지, 관계에 지나치게 불안해한다든지... 각자가 가진 키워드 역시 모두 다르다. 내가 지닌 불안의 키워드는 '잃어버림, 사라짐'에 가깝다.
예를 들어 건강에 대한 염려와 불안이 요새 꽤 있다. 그런데 좀 다른 점은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가 아니라 '건강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가 나의 불안 요소라는 것이다. 두 가지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고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그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투병기도 써볼까 상상해 보고, 무엇이든 붙잡고 끝까지 병과 싸우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현재 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두려운 것은 '병'이나 '죽음', '고통' 이런 것보다는 살아있는 동안의 '일상이 무너질 것 같다는 불안'이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가족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고, 금전을 잃고, 일상에서 당연하게 하던 것들을 할 수 없다는 불안.
'불안'의 핵심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예측'이라는 점이다. 예측이기 때문에 의외로 우리가 예측한 불안은 오지 않는다. 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일어난다면 사실 예측과 다르게 더 큰 시련이 닥친다. 결국 '불안'은 대부분 상상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내 일상의 지배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건강에 대한 불안으로 나는 운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진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운동을 하고 나서 성취감을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안도'에 가까운 것 같다. 오늘치는 했으니까 불안도를 좀 낮추는 것.
불안도를 낮추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불안해서' 하는 방향성의 측면에서는 조금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깨달았다.
하지만 글쓰기는 조금 달랐다. 요즘 느리게 읽기와 단어사전을 거의 매일 연재를 하며 잘하고 있는 건지, 올바르게 가고 있는 건지 하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글쓰기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일치해서' 하고 있었다. 횟수에 대한 부분은 좀 조절이 필요하겠지만, 글쓰기 자체는 나의 방향성에 맞는 것 같다. 사색하고 성찰하는 삶.
이렇게 성찰을 하다 보니 나는 그래도 '행동'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도 꾸역꾸역 하고 있고, 글쓰기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일단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운동에 대해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따라' 할 수 없을까 고민해 보았는데, 뜬금없는 결론이지만 결국 생각하기 나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사색하고 성찰하는 삶을 위해서는 건강도 필요 요소 중에 하나이니까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책에서는 '행동'에 주목하라고 했지만, 행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행동의 동기를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운동을 불안해서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럼 운동을 그만두는 것이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지만, 결국 생각을 전환해서 긍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내 삶에 방향과 맞는 '동기'로 조금씩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에 의해 부정적 행동을 반복한다면 멈추어야겠지만, 내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행동과 부정적 영향을 주는 행동을 나눌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또, 운동과 건강에 대한 불안을 조절하기 위해 '기준'을 조정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운동으로 근육을 만들고 근육량을 늘리며 체지방을 빼는 것이 내 방향은 아니다. 성찰하고 사색하며 성장하는 건강한 삶이 방향이라면 매일 운동할 필요도, 운동량에 대한 압박을 받을 필요도 없다.
얼마큼 하든 불안해하기보다는, 너무 부족하지 않게, 필요 이상으로 과해서 기력을 소진할 필요도 없게. 내가 잘하는 '꾸준히'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이 꾸준히가 아니라 띄엄띄엄이라도 멈추지 않고 오랜 기간 지속하는 것이 나의 꾸준함이니 말이다.
오늘은 소화한 내용을 글로 썼다기보다, 글을 쓰면서 소화가 되는 면이 있어서 더욱 좋았다. 나의 불안과 너무 멀어지지도, 너무 가까워지지도 않게. 적절한 거리에서 조금 더 안정적으로 함께 갈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