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당황스럽다. 세 개의 챕터를 더 읽고 글을 써야 느리게 읽기를 완독 하는데, 브런치 북의 최대 연재 개수가 30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 편의 글을 더 쓴다고 이 브런치북의 완성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내가 느리게 읽겠다는 다짐이었을 뿐. 뒤에도 좋은 글과 문구가 있지만, 이미 중요한 핵심은 작가님이 다 전해주셨다.
이미 배운 대로. 삶은 내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나는 그저 수용한다.
그리고 지금 쓸 수 있는 마지막 글에 전념한다.
별거 아닌 글일 수 있지만, 끝까지 주 5회 연재를 해냈다. 당황한 나머지 어제 못한 것을 빼고는 매일을 유지했다. 무슨 글들을 써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내가 완성했다는 것은 내 몸에 경험으로 새겨진다.
동서양의 고전이 오래 읽히고 계속해서 후대의 사람들에게 읽히고 재생산되듯이,
꼭 고전이 아니라도 가치 있는 책은 계속 읽히고 재생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내게 그런 책이었다.
내 삶이 완벽할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좌절이 존재함을 받아들이는 '수용',
삶의 고됨을 감수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전념'
책 한 권이 삶을 바꾼다고 하는 것은 허언이 아니다.
일전에 <미움받을 용기>가 내가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주었다.
이 책,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는 내가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주었다.
당연히 흔들리고 실수하고 잘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작가님이 말해주는 에필로그의 말을 인용해 내 삶의 가치에 대한 정의도 다시 세워보며 마친다.
목표와 달리 가치는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가치는 달성할 목적지가 아니라 일종의 방향이다.
한 챕터에 하나의 글이라는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지만, 책을 느리게 읽고 내 것으로 소화하고 싶다는 그 방향은 달성했다. 그리고 그 소화한 것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 주었다.
일기에 가까운 자기 소화의 글을 함께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며.
'수용'과 '전념'을 잠시라도 만나고, 충만하고 평안한 삶을 만들어가는 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랄 뿐이다. 내가 아주 큰 도움을 받아서 그것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작가님께, 읽어주신 분께, 그리고 나 자신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