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거의 마지막에 다 와서 이 책이 나를 다시 울릴 줄은 몰랐다...
오늘 챕터의 제목은 '의미를 몰라서 자유로운 우리의 삶'이다. 제목부터 참 역설적이다. 인생의 고난을 수용하고 의미나 가치를 추구하는 일상을 살아가라는 이야기를 그렇게 해왔는데, 의미를 몰라서 자유롭다니. 하지만 설명을 들어보면 딱 맞고 요즘 말처럼 '뼈 때리는' 이야기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고통이 지나치면, 인간은 알량한 단어들을 나열하며 그 고됨의 이유를 설명하려 든다. 삶이 선사하는 느낌 자체는 뒤로한 채 빈약한 이성과 논리를 동원한 설명에 집착한다. 삶의 고통을 마주하고, 그 고통을 견딜 논리를 찾고, 그 논리의 허술함에 다시 절망하는 악순환이다. (중략)
지극히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뼈아픈 인생의 무게에 비해, 생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소소한 것들, 지금의 나 자신과 미래를 위한 작은 시도들은 하찮기 짝이 없게 여겨진다. 그렇게 우리는 시시각각 우리에게 쏟아지는 진짜 의미들로부터 멀어져, 어떠한 기쁨도 생기도 주지 않는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라는 감옥에 갇힌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249.
작가님의 글이 원래 객관적이고 담담한 편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글을 신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신랄함이 찬물을 맞은 듯이 나를 깨운다.
나는 요즘 왜 글을 쓰고 있는가. 말 그대로 '알량한 단어의 나열'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미와 가치를 찾겠다고 말하며 정말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니라 행복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책에서 말하는 수용전념 심리학을 포함하여 요즘의 심리학 이론에서는 (전통적인 무의식 이론이나, 과거의 트라우마를 분석하는 형식이 아닌) '현재'를 중시한다. 좀 더 거칠게 말하자면 (의미를 찾고 과거를 분석하고 해석하기보다) 현재의 삶과 일상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그 이론들을 공부하여 석사까지 따고 이렇게 책도 읽고 있지만, 결국에는 알량한 단어와 빈약한 이성으로 생각만 늘어날 뿐이다. 삶의 의미에 대한 책을 아무리 읽어도 머리로는 답이 찾아질 것 같지 않다.
누군가가 내게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이런 것들이라 억지로 답하겠으나, 말로 표현하는 순간 이미 그것들이 주는 생기를 오롯이 전달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나를 살게 하는 그 느낌은 어차피 말로는 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 순간에 온전히 몰입할 수만 있다면.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254.
불교에서 말하는 불립문자. 직역하면 문자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더 풀어 말하자면 진리가 말이나 문자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달되고 스스로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깨달음으로 체득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말로 쓰고 글로 정리하는 '의미'는 소용이 없다. 단어는 가장 가깝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불과하지 그 느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으니까. 결국 내가 '느끼는'게 중요함을 또 배워간다.
말은 줄이고, 오늘은 의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의 편안함을 느껴보기로 한다.
내가 좋아하는 침대에 누워서, 재밌게 봤던 웹소설을 다시 읽다가 스르르 잠드는 걸로.
오늘 밤의 행복은 이것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