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하게 붙잡기

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by 예그림

우리는 추구하고자 하는 의미와 가치를 위해 그 순간의 최선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것이 비록 우리가 바라는 대로 '완벽하게'가 아니라 미흡하게, '느슨하게'일지라도.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오늘 챕터는 수용전념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느슨하게 붙잡기'라는 개념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꾸준히 한 발짝 한 발짝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말 같다. 실천을 못하고 생각만 담고 있다 보면 나는 게으르고 모자란 사람이 되어버리고 결국엔 해보려는 마음조차 흐려지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그럴 때 우리가 원하는 가치나 의미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주는 게 '느슨하게 붙잡기'라는 말 같다.


나도 꽤나 꾸준하다는 말을 듣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기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완벽주의', '통제주의'가 사라지지는 않기에 더욱 어렵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건강하다.' 반박하기 쉽지 않은 명제이지만,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마음을 먹으면서 한창 운동하던 4,5월쯤에는 달리기, 실내 자전거 타기, 유튜브 영상 보고 홈트 하기 등을 주 5회 이상 꾸준히 했었다. 한 종류나 똑같은 것에 잘 질리는 성향을 알기에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시간도 자유롭게. 무엇이 되든 주 5회 정도만 하자고 마음먹었고, 꽤나 잘 실천했다. 아마 지금의 체력은 그때 운동해 놓은 것을 깎아먹으면서 버티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요즘은 운동을 못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의식적으로 조금 쉬고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해주는 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아이를 준비하며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나 복압이 올라가는 홈트 동작들은 괜히 하기가 좀 꺼려졌다. 인터넷 속 멋진 엄마들은 임신한 채로 근력 운동도 하고 달리기도 하던데... 다섯 쌍둥이의 출산을 도운 저명한 산부인과 선생님도 임신하지 않은 것처럼 살고 태교는 필요 없다고 했는데... 생각을 하다가도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운동을 하면서도 괜찮을까, 괜히 복압이 올라가면 안 좋을까, 혹시나 무리이지 않을까, 운동은 원래 좀 무리가 되고 근육에 과부하가 걸려야 하는 거긴 한데.. 하면서 머리만 복잡하고. 운동을 해도 스트레스 안 해도 스트레스인 날들이 좀 지속되었다.

지금은 마음의 평화를 위한 타협을 했다. 시술 이후부터 착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는 2주간은 걷기만 하루 만보 정도 되도록 열심히 하고 너무 과식하지 않게만 조절하기로. 임신이 되지 않고 시술을 하기 직전까지의 2주가량은 평소처럼 달리기와 홈트, 실내자전거 타기를 하기로 했다.


2주는 운동하고 2주는 운동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꾸준하다'의 정의는 매일매일을 이어나간다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매년 겨울마다 여행을 가는 가족은 '꾸준히' 여행을 가는 것이고, 운동을 하다가 몸이 아파서 잠시 쉰 사람도 회복 후에 이어나간다면 끈기 있는 것이다. 꼭 지속적인 반복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작가님도 오늘 챕터에서 이야기한 것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글을 쓰느라 어느 날은 30분, 어느 날은 7분, 어느 날은 1분 정도 쓰다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달려간다고 한다. 조각모음 같은 글이지만, 그 글을 쓰는 것이 더 소중하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떤 일상도 결국에는 찰나의 조각들을 모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지만, '꾸준함'을 떠올릴 때 세수나 양치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매일 잠도 자는데 잠자기를 꾸준함의 사례로 드는 사람도 적을 것이다.

그럼 결국 '꾸준함'도 이번 장(축)에서 이야기하는 '나만의 가치'와 연결되어야 의미 있는 것이다.


운동을 꾸준히 한다도 아니고, 내가 꾸준하고 싶은 것은 '건강'이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것은 운의 영역도 분명히 있으니. '건강을 꾸준히 신경 쓴다.'가 내가 원하는 가치 명제 같다. 이 '건강'에는 내가 신경 쓰는 체중관리와 식단 조절도 포함되고, 위생 관리도 포함되고, 더 나아가면 마음 건강을 위해 꾸준히 받고 있는 심리 상담도 포함된다.

얼마간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먹는다고, 내 가치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완벽주의를 조금 내려놓고 꾸준함의 기준을 조금 낮추는 것. 그게 오늘 챕터에서 말한 '느슨하게 붙잡기'가 아닌가 싶다. 느슨하든 팽팽하든 내가 원하는 것을 끝까지 놓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느슨하게 붙잡기'의 핵심은 '느슨하게'보다 '붙잡기'이다.

야학 봉사활동에서 만난 할머님이 아직도 떠오른다. 60년 만에 한글을 배우는 것이 재밌다고 말씀하시던 그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할머님의 한글 공부에 대한 열망은 60년 동안 '느슨하다'는 표현을 하기도 어려울 만큼 흐려져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할머님이 생각만 하고 떠올랐던 그것을 붙잡았다는 것이다. 그 연세에도. 낮에는 일을 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한글을 공부하시던 그 마음이 '붙잡기'의 핵심인 것 같다.




그리고 한 단계만 더 나아가 보자면, 모순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붙잡을 수 없다. 우리의 손은 두 개이고, 마음의 그릇도 생각보다 좋아서 세상의 모든 좋은 가치를 다 담아둘 수 없다. 그러니 꼭 붙잡아야 할 것 한 두 가지 외에는 놓아주어야 소중한 것을 더 잘 붙잡을 수 있다.

아기들을 보면 손에 쥔 것을 놓지 않고 다른 것을 또 잡으려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잘 놓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느슨하게'인 것 같다. 보이지 않고 절대 놓치지 않게 잡으려면 주먹을 꽉 닫아서 조금밖에 못 쥘 수 없다. 하지만 느슨하게 손에 건다면 좀 더 많은 것을 걸어둘 수 있다. 다소 불안정하게 느끼긴 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것을 많이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러다가 놓아지는 것은 자연스럽게 놓아 보내고 내 손에 꼭 쥐어야 할 것만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내 손에 남는 것이 있다면 '최선'도 '행복'도 '성공'도 아닌 '꾸준함'이 남았으면 좋겠다. 매일 반복한다는 빡빡한 꾸준함 말고, 내가 원하는 의미와 가치를 계속 찾았다는. 가끔 지쳐서 놓은 적이 있더라도 의미 있는 삶을 계속 생각해 왔다는 그것이 남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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