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yeon Jun 16. 2022

런던에서 온 해리엇 -3-

지연하우스에 사는 영국 게스트 해리엇(Harriet).

2주 일정으로 방한했고 이번주 금요일 아침 귀국 예정이다. 하루에도 몇 개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고 한국을 깊게 탐미하는 여행을 하고 있다.

아침에는 부암동 점심은 광화문 오후는 남양주 이런 식이다. 좋아하는 책을 읽으려 앤틱 고서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유독히 번역된 한국 책을 많이 읽었다. 교보에서 사 온 황석영의 “해질 무렵”(영문 타이틀 AT DUSK)을 어제 여수에 내려가는 KTX 안에서 다 읽었다고 한다(썩 재밌지는 않았다고 함).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영문 타이틀 Love In The Big City)”을 재미있게 읽었고 당연히 유럽에서 제일 잘 알려져 있는 한강의 소설도 섭렵했다(유명세와는 별개로 내용이 좀 이상..? 하다는 것은 호스트와 뜻이 일치).


같이 한강을 걷다 잠수교가 나타나자 Parasite의 봉준호 감독의 예전 영화 괴물(영문 타이틀: THE HOST)이 나타났던 곳이라고 일러 주니 유심히 관찰한다. 기생충, 봉준호 이런 단어는 이미 알고 있음).


그러더니 갑자기 신이 나서 구글링을 하더니 어떤 영화를 보여 준다.

나도 정말 재미있게 봤던 김씨표류기(영문 타이틀: Castaway on the Moon).

이 영화가 구미에서 의외의 화제작이라는 이야기는 몇 년 전 인터넷 기사에서 봤었는데 실제로 그러했다니 흥미롭다. 김씨표류기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하다가 “엽기적인 그녀” 또한 재미있게 봤다는 그녀에게 나와 그녀는 이름이 거의 같다며 원래 지연/지현 이런 애들이 예쁜 거라고 실없는 소리를 해 본다. 우크라이나 국기 색으로 조명을 꾸민 한강 넘어 반포 쪽 새빛둥둥섬을 바라보며 “견우야~~~!!!”를 한번 외쳐 줬더니 해리엇이 깔깔거리고 웃기 바쁘다. 그 반응에 힘입어 마치 전지현에 빙의된 듯 이제 중년아저씨가 되었을 견우 씨를 한번 더 불러 주었다.

비틀즈, 휴그랜트, 노팅힐, 베네딕트 컴퍼비티, 톰 홀랜드, 세익스피어, 아가사 크리스티 등, 내가 기억하는 영국 관련 인물들을 꺼내 보았다.

영국의 원래 발음으로 말하는 지명과 인명들을 한국어 고유발음으로 단호하고 권위적으로 정정해 주자 ㅋㅋ거린다. 특히 내가 너무도 좋아했던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영제: And Then The Were None)를 얘기하며 100년도 넘은 사건 얘기를 하며 신나하자 영국판 영화 트레일러를 보내 주었다.


어제 해리엇은 여수에 내려갔고 그 전날 잠에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 “여수밤바다”를 들려 주었다(but 이미 알고 있었음..).

오후 늦게 해리엇에게 연락이 왔는데 여수에서 일박하기로 한 에어비앤비의 호스트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 집 앞까지 와서 들어갈 수가 없어 지연에게 헬프를 요청한 것. 나도 계속 전화를 했지만 받질 않아, 결국 피곤에 지친 그녀는 일박을 접고 서울로 그냥 올라왔다. 그 호스트 하우스의 리뷰를 보면 좋은 분 같던데 무슨 사고가 생긴 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밤 열 시에 터덜터덜 도착한 그녀에게 밥을 먹었냐고 물었더니 not yet 이란다. 우린 또(특히 지연은) 누가 밥 안 먹었다는 것에 큰 초조함(!)을 느끼는 민족 아니던가.

자취 경력 20년이지만 메뉴 다섯 개로 돌려막는 식생활을 하도 있는 내가 김치찌개에 달걀아무거나넣어부침을 만들어 얼른 먹였다. 남은 김찌에 밥까지 말아 잘 먹는 해리엇을 보니 밤의 수고가 사라지고 만족스럽다. 그 전날에는 짜파게티 컵라면을 또 먹는 그녀를 만류하고 그냥 짜장라면에 계란을 얹어 해 줬는데, 이쯤되니 내 성향을 잘 파악한 해리엇의 큰 그림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아무튼 지금 남대문이라며 자기 뭘 먹을지 물어 보는 해리엇에게 잡채호떡과 가메골왕만두를 일러줬다.


오늘은 Physical work 은 없고 Paper work 만 있는 조금은 한가로운 화요일. 좋아하는 음악도 크게 듣고 전자북에 관심가는 책도 채우고 포스팅도 하고.. 이 낮이 더 오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나른한 오후.


https://youtu.be/HfFqHONPUa0

작가의 이전글 런던에서 온 해리엇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