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열차의 소리와 허밍을 통해 듣는 젊은 여성의 고단한 이동
“난 그저 여길 지나가고 있어요. I’m just passing through.”
외지에서 온 웬디는 자신의 ‘거처 없음’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상황은 그녀의 말처럼 되어가지 않고, 모든 면에서 그녀는 이곳에 발이 묶인다. 차는 고장 나고, 반려견 사료를 훔치다 걸려 경찰서에 넘겨지고, 무엇보다 반려견 루시를 잃는다. 주소도 없고 핸드폰도 없어서 유기견 센터에 매일 확인 연락을 하는 것조차 고장 난 차를 세워둔 곳의 주차요원의 선의에 기대서야 가능하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알래스카까지 페리를 타고 가려면 경비를 더 줄여야 하는데, 보석금을 내느라 그마저 있는 돈은 더 줄어들었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는 이 영화에 음악이 없구나 싶었다. 두 번째로 다시 보았을 때는 오프닝, 엔딩, 그리고 타이틀 화면에 들리는 소리가 화물열차의 소리라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철길을 따라 길고 둔탁하게 이어지는 소리. 그녀의 소망처럼 이곳을 걸림 없이 유유히 지나가는 소리. 그녀는 과연 이 소리처럼, 화물열차들처럼, 길을 떠날 수 있게 될까?
십여 년 전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 Trentino라는 지역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며 소리를 녹음하고 그 재료들로 음악을 만들어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화물열차와 여객열차가 같이 운행되는 기차역이 있었어서, 그곳에서도 녹음을 했었다. 진동을 수음하는 피에조 마이크와 다른 몇 가지 마이크를 세팅해 두고는 열차가 들어올 때에 맞춰 철로를 벗어났다가 열차가 빠져나가면 녹음한 것을 확인했다. 거대한 소리의 근원이 이곳으로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그 소리가, 내가 작곡하고 있는 이 지역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여는 소리가 되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녹음물의 순서를 배치했었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열고 닫는 역할 역시 화물열차이다. 이동비용이 없는 이들은 루시처럼 승객을 실어 나르는 운송열차가 아닌 화물열차에 짐처럼 실려서 어디론가 실려나간다. 산업시설이나 운송시설이 발달한 지역일수록 공간을 강하게 점유하는 소리들이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인 조나단 레이먼드의 단편 소설제목이 Train Choir(열차 합창)라는 점은 이야기의 공간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열차의 존재가 그만큼 크다는 점을 상징한다. 미국영화에서 화물열차의 등장은 꽤 빈번한데, 서부개척시대에 만들어진 남성 캐릭터 위주의 서부영화 장르를 떠올려본다면 <웬디와 루시>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미국 여성의 관점에서 재접근된 영화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상향의 개척을 위해 열차를 타는 것이 아닌 그곳을 떠나기 위해 화물열차를 전용하는 빈곤한 젊은 여성의 현실을 보게 된다.
이 크고 둔탁하고 지배적인 기차소리와 대비를 이루면서 영화에 세심하게 삽입된 소리로는 웬디의 가느다란 허밍이 있다. 웬디 자신만이(어쩌면 루시와) 들었을 내밀한 소리이다. 허밍은 영화 전반에 걸쳐 세 번 들리는데, 오프닝(화물열차 씬) 이후 웬디가 루시와 함께 산책할 때 맞은편에서 그들을 따라 카메라가 트래킹 하는 씬에서 처음 나온다. 이 장면이 특이한 느낌을 주는 건 카메라의 시선인데, 이는 마치 삼자가 이들의 산책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웬디가 루시에게 말을 하는 중에도 허밍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산책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 웬디가 내는 허밍은 아닌 것 같다. 음향적으로도 맞은편에서 산책하고 있는 루시의 말소리에 비해허밍은 카메라의 위치에 훨씬 가깝고 생생하게 들리도록 믹싱 되었다. 추측해 보건대 여기서 허밍은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다른 시간대에 지금이 순간을 지켜보는 이의 허밍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 허밍의 삽입은 분명 구성된 배치에 의해 의미가 생성되는 소리 연출의 결과이다. 나는 이 허밍이 이곳을 통과한 미래의 웬디가 이 도시에 두고 온 루시를 회상하며 부르는 허밍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때의 일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딘가에 있을 웬디(그녀는 알래스카에 도착했을까?)가 슬픔과 그리움, 미안함으로 부르는 허밍 말이다. 루시를 잃은 것은 거의 자기 자신을 잃는 정도의 아픔과 맞먹는 상실이었을 것이다. 웬디가 실종 전단지를 만들어 붙이는 장면에서 'I’m Lost'라는 문장이 그녀와 한 화면에 담길 때, 그녀가 잃어버린 건 그 자신이라는 암시를 주는 것 같다. 어쩌면 루시와 산책을 하던 그때를 다소간의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된 꿈 속인 지도 모른다. 그것이 회상이든 꿈 속이든, 이 허밍의 배치는 영화가 말해지는 방식과 시간의 겹을 영화에 더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루시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몇몇 장면들에서 그녀는 줄곧 소외되어 있다. 밤의 공중전화 장면은 가족에게 자신의 곤경을 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선명히 보여준다. 기찻길 주변에서 불을 피우고 모여있는 젊은 홈리스들의 얼굴을 비추는 클로즈업 카메라, 대화에서 소리를 뮤트 하는 방식의 편집은 웬디가 이들에 대해 느끼는 낯섦과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이들은 알래스카의 공장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웬디에게 주기도 하지만 그다지 신뢰할만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주차된 차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는 장면은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변변한 일자리를 찾아 몇 시간씩 운전을 하거나(<어떤 여자들>), 아예 고향을 떠나야 하는 고단한 여정 속에 있다. 웬디의 얼굴은 늘 불안하고, 불편하며, 곤란해 보인다. 웬디가 옅게나마 미소를 띠는 장면은 영화 안에서 손에 꼽는데, 그나마 주차 요원의 친절과 호의로 인해 웬디는 주차장 근처를 일시적인 거처로 삼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주차요원이 지폐 몇 장을 몰래 쥐어주는 그 선의란 얼마나 드물고 기댈 수 없이 연약한 것인지. 자동차 수리가게에서 무료로 마시게 된 커피에 작은 미소가 새어나가기가 무섭게 수리비가 폐차비보다 더 많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가진 것이 거의 없어 보이는 이가 더욱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급히 트렁크를 열어 가방을 꾸릴 때 아마도 그녀에게 중요한 의미일 가족사진첩과 작은 유품함이 보이지만 추억을 간직할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웬디는 그것들을 다른 옷가지들과 함께 가방에 겨우 우겨 담는다.
웬디는 루시를 데려가지 못하고 혼자 화물열차에 오른다. 그녀가 웅크린 채 바깥을 응시하며 이곳을 빠져나갈 때 허밍은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가진 것을 거의 모두 잃고서야 비로소 이곳을 지나갈 수 있게 된 지금, 이 출발 속에 어떠한 기대도 자리하기 어렵다. 허밍은 더욱 처연하게 들린다.
일렉기타 톤 기반의 엔딩 크레딧 음악은 영화가 절제해 왔던 감정을 건드린다. 기타 피드백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잔향은 천천히 사라지는 화물열차의 음향과 웬디의 허밍에 대한 일종의 음악적 응답으로서 오랫동안 관객의 곁을 맴돈다.
<웬디와 루시>(2008)
- 원작: 존 레이먼드의 단편 소설 「Train Choir」
- 제작: 토드 헤인즈
- 감독: 켈리 라이카트
- 음악: Will Oldham
- 사운드 디자인: Leslie Shatz
듣기 음원들
#허밍 씬
#엔딩 크레딧 음악
* 다음 영화로는 '2025 막간: 경계에 머무는 시선'(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예매한 켈리 라이카트 연출의 <믹의 지름길>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듣기의 관점에서 들여다보았으면 하는 영화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영화 선정에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