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되지 않는 기류를 따라
켈리 라이카트의 <믹의 지름길>과 <웬디와 루시>는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이다. <믹의 지름길>에는 1845년 서부 개척시대에 이주자들이 웨건 마차와 소를 끌고 이동하던 길인 오레곤 트레일이 주 무대로 등장한다. 이 오레곤 트레일은 이후 대륙횡단열차 개통으로 인해 화물열차길로 바뀌게 되는데, 대략 170여 년의 시차를두고 <웬디와 루시>의 배경이 된다. 웬디의 고조할머니 또는 그 윗대의 조상이 <믹의 지름길>의 에밀리가 되는 셈인데, 같은 배우(미셸 윌리엄스)가 두 인물을 연기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영화 간 통시성은 켈리 라이카트의 영화세계를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지점이 된다. 이렇게 한 장소의 각기 다른 시간대를 다루는 영화적 기획은 이 장소가 어떤 문화사적, 역사적 맥락에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톺아보려는 감독의 일관된 방향성으로 느껴진다.
<믹의 지름길>은 <웬디와 루시>의 오프닝처럼 인물들의 움직임을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시작하면서 장소성과 인물의 이동 간의 관계설정을 보여준다. 여자들은 머리 위로 새장과 짐을 이고, 남자들은 웨건과 소를 끌고 물을 건넌다.
온라인 서점에서 당시 오레곤 트레일을 횡단했던 이주자들이 쓴 저널(일기)을 찾아보다가 책에 달린 독자들의 코멘트를 읽게 되었다. 저널의 집필자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기록한 내용이 많이 다르다는 의견이 있었다. 영화에서도 남성과 여성에 따라 횡단의 여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의 세부가 확연히 달랐음을 볼 수 있다. 남성들은 경로를 확인하고, 웨건 마차와 소를 몰고, 기구가 고장 나면 수리를 하며, 일어날지 모를(정확히는 그들이 상상하는) 불시의 외부 습격에 대비해 보초를 선다. 여성들은 식사 준비와 뜨개질을 하고, 세탁을 하거나 불 피울 나무를 줍고, 새와 아이를 돌본다. 그중에도 세 이웃 여성이 컵 하나에 든 마실 것을 한 모금씩 차례로 나누어 먹는 장면, 웨건 마차 뒤에 모여 앉아 뜨개질을 하는 장면, 서로 긴말 없이도 대화 중에 모래먼지처럼 웃음이 피어나는 장면 등은 남성들 무리에서는 볼 수 없는 정서의 교류와 생성이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자수로 만든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은 그래서 더욱 반가운 장치이다. 남성들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두고 누구의 말을 신뢰할지에 대해 옥신각신 하는 동안 여성들은 이동과 이동 사이 정주의 시간을 좀 더 머물만한 시간이 되도록 만들려는 작은 행동들을 계속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믹의 지름길’은 실제 역사상 존재했던 사건의 이름이다. 서부개척시대, 당시 지역을 잘 아는 인물인 스테판 믹을 고용하여 횡단하던 일군의 가족들이 믹의 오판으로 길을 잘못들어 사망한 일이 벌어진다. 영화에서 믹은 독단적일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차이라든지, 원주민에 대한 강한 편견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길을 잃은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본인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믹과 그를 불신하지만 그렇다고 방향을 틀지 못하는 일행에게 우연히 한 원주민이 나타난다. 무리의 남성들은 다짜고짜 그를 잡아와서는 죽일지 살릴지 회의를 한다. 믹에 대한 일행의 신뢰가 바닥이 나는 시점에서 원주민은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 물의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라 ‘추측되며’ 그래서 그를 살려서 길안내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이제 여정의 안내자는 믹에서 원주민 포로에게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영화 속 관계의 역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에밀리는 원주민에게 자발적으로 빵과 물을 가져다주고, 심지어 그가 신고 있던 신발을 벗겨서 해진 부분을 꿰매주는 등 적극적인 호의를 보인다. 사실 더 정확히는 그 원주민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정작 원주민은 이에 별다른 감사를 표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몇 입 빵을 베어 물고는 뱉어버리거나, 그저 에밀리를 흘끗 볼뿐이다. 에밀리는 다른 이웃 여성에게 “그가 내게 빚지게 만들고 싶어요.(I want him to owe me something)라고 말한다.” 과연 그녀의 말은 어떻게 생각될 수 있을까?
맨 처음 원주민과 조우한 이는 에밀리였다. 땔감으로 쓸 나무를 주어 몸을 구부리다 일으키는데 처음엔 모자에 가려져서(여성들이 쓴 모자의 차양 모양은 웨건 마차의 천막 모양과 무척 유사하다) 발부터 점점 고개를 들어 마지막에 원주민의 얼굴을 확인하게 된다. 카메라 워킹은 마치 문장을 다 읽은 마지막 맨 끝에 와서야 주어를 확인하게 되는 감각과 비슷한 의도성과 묘한 집중감을 자아낸다. 사람들이 에밀리에게 원주민의 인상착의를 물었을 때, 에밀리는 원주민이 옷을 입고 있었는지 조차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그의 어깨에 난 상처 자국만큼은 선명히 볼 줄 알고 기억하는 인물이다. 믹이 에밀리에게 원주민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두고 파괴와 혼돈이라는 모호하고 주관적인 인상을 사실처럼 늘어놓을 때도 에밀리는 믹에게 가르치려들지 말라(don’t patronize me)고 하거나, 당신은 여자에 대해 잘 모르는군요라고 정면으로 비판하며 비꼰다.
영화의 야외 엠비언스는 상당히 조용하게 믹싱 되었다. 그 흔한 실제 바람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오로지 행위와 소품들, 대사 위주의 소리로 믹싱 되어 있다. 그럼에도 영화에는 계속 어떤 기류가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일관된 톤으로 작곡된 음악의 역할이 크다. 공기를 부는 느낌의 첼로악기 특유한 마찰음이 이 영화의 주된 톤을 형성하고 있다. 사막에 부는 바람처럼, 무언가 확정되지 않는, 기미를 느끼게 하는 음악이다. 과연 원주민이 일행을 삶으로 이끌지 죽음으로 이끌지는 이 영화가 관객을 어디로 이끌지 와도 평행하게 연결되는데, 끝까지 확정되지 않는 영화의 분위기를 사운드가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듯 흐르게 하고 또 멈추하게 함으로써 영화의 리듬을 부여한다. 영화는 물리적 종착지에 완전히 당도하며 끝나지 않는데, 관객의 한 명으로서 영화 내내 잘 헤매었다는 느낌, 인물들과 함께 헤매었다는 과정으로서의 공동 체험 같은 것을 느꼈다.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묘연해지는 이 불확실한 여정에서 카메라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는지 살피며 인간의 존재조건을 들여다본다. 누군가는 하느님의 말씀을, 누군가는 자신의 낙관을, 누군가는 옆에 있는 낯선 타자인 원주민을 믿는다.
원주민은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에게, 신에게, 혹은 자신 안의 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또한 틈만 나면 돌과 바위에 그림을 그리는데, 일행 중 한 여인은 이를 두고 원주민이 부족들을 불러 모아 자신들을 몰살시키려는 기호라며 불안해한다. 믹은 그가 기도하는 중일 거라고 한다. 어느 날은 한 남자가 강행군으로 쓰러지자 원주민은 자기 부족의 일상을 대하듯 노래를 불러주는데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그 노래만으로 사람들은 눈물을 보이고 마음의 들림 같은 움직임이 일어난다.
우리는 누군가를 어떻게 신뢰하게 되는가? 신뢰할만하기에 신뢰하는가, 신뢰의 근거는 어디에 두는가? 우리는 타인을 어떤 근거로 믿을 수 있는가.
<웬디와 루시>에서 웬디에게 조건 없이 호의를 베푸는 인물은 주차장의 요원이었다. 그는 그래야 할 이유(교환가치로서의 신뢰)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일종의 연민에서 나온 베풂, 선의에 가까웠다.
<믹의 지름길>에서는 어떤가? 에밀리가 원주민에게 잘 대해주는 이유는 살고 싶기 때문이며, 그가 자신들을 살려주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여기서 신뢰는 생존을 위해서 선택한 것의 효과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주민을 볼 때마다 두려움과 반신반의에 찬 표정을 내보이는 에멜리이지만 믹에게 원주민을 두고 “그도 저희와 똑같던 걸요”라고 말한다.
일행은 원주민의 제안 대로 언덕을 넘다 세 대의 웨건 마차 중 한대가 전복되고 물통마저 엎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때 믹은 원주민에게 총구를 겨누는데, 그러자 에밀리가 믹에게 총구를 겨눈다. 아마도 이 장면은 영화의 절정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백인 여성이 원주민을 살리기 위해(적어도 원주민을 죽이려는 백인 남성을 방해하기 위해) 백인 남성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도발이다. 이러한 도발은 어쩌면 그들이 길을 잃었기에 가능해진 상황일 것이다. 에밀리는 이 상황을, 원주민의 존재를 어떻게 보고 있기에 믹에게 총을 겨누는가? 에밀리는 믹으로 대표되는 기존 질서와 체계가 더 이상 그들을 삶으로 데려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원주민을 완전히 믿을 수 없을지언정 이전과는 다른 길이여야 한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다. 영화 초반, 일행 중 한 명이 백화 된 나무 기둥에 돌로 새겨 쓴 “Lost(길 잃음)”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이 도발을 가능케 한 조건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었을까.
역사적으로 믹의 지름길은 횡단의 지름길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죽음의 길이었다.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길이,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세계로의 변화를 당겨오는 또 다른 의미의 '지름길'이 되었다.
<믹의 지름길 Meek’s Cutoff>(2010)
- 감독: 켈리 라이카트
- 작가: 존 레이먼드
- 음악: 제프 그레이스
- 사운드 디자인: 레슬리 샤츠
https://youtu.be/L3aWEuOMtr4?si=EkxCyQvh31eZ81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