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과정] 영화음악이 상상하는 것들

모호한 구름을 관찰하기

by 김지연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음악’의 자리는 어디일까? 그곳을 어디로 상상해 볼 수 있을까?


때때로 영화에 대한 내 마음이 영화음악에 대한 관심 그 이상을 초과한다고 느낀다. 그것은 영화 만들기에 대한 사라지지 않은 개인적인 미련일 수도, 다시금 새로운 시간과 사람들의 영향 아래 자라나는 새로운 관심일 수도 있겠다. 맡고 책임질 분명한 영역을 해내어 영화에 기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꾸만 무정형으로 커지거나 또 직시하면 줄어들어 사라지는 모호한 구름 같은 마음을 품은 채 영화를 만나고 있다.

얼마 전 첫 미팅에 다녀왔다. 한 달 전 연락이 왔던 다큐멘터리 팀과의 미팅이었다. 기획서와 편집본을 모두 흥미롭게 봤다. 지금까지는 해본 적 없는 사적다큐였는데, 나는 이미 이 영화에 설득되었고 좋아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언젠가 만들고 싶었던 방식-영화 만들기와 삶을 사는 것이 서로 얽히는-의 영화였고, 지금의 나는 이러한 영화를 연출할 수 없음도 명확히 알고 있기에, 이것을 만들어 내는 감독과 프로듀서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이미 만나기 전부터 그랬다. 두 명의 프로듀서와 감독, 나, 이렇게 네 명이 어느 도심의 찻집 테이블에 앉아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고, 서로 잘 부탁을 드린다 하고, 헤어졌다. 오가는 길에 미팅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노트에 기록했고 그날 저녁에는 예정된 가족일이 있어서 미팅에 대해 더 생각하진 않고 잠이 들었다.


새벽에, 감독의 말 한 문장이 나를 깨웠다. 그것은 꼭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해 볼 만한 반응이었다. 이어서 나는 미팅에 대해 복기를 해보다 문득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너 이 일이 정말 하고 싶은 거야?

이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프로듀서와 감독이 전해 준 에너지도 좋았고, 나는 이미 이 영화의 편집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건 분명한데.

아마도 모호한 구름이 다시 커지는 소리일 것이다.


미팅을 하고, 일을 맡고, 계약을 하고, 소통하고, 창의적으로 해내고, 마감을 지키고, 잘 헤어지고, 이후에 그 영화가 영화제나 개봉을 통해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그 과정은 짧으면 2년 대게 3년 정도가 걸렸다. 내가 음악으로 참여해 온 영화는 대부분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이고 실제로 음악 작업을 하는 시간은 채 2달이 되지 않지만 첫 미팅을 하고 영화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전해받고, 기다리고, 소통하고, 몇 번의 편집본을 보고 의견을 전달하고, 실제 영화작업에 들어갈 파인컷을 받기까지의 시간부터, 이미 나는 그 영화에 온-보드 상태가 된다.

영화음악가로 10년을 채 일하지 않았지만 편수로는 5편을, 말하자면 그러한 일의 사이클을 5번 지나오면서 나는 이 일에 대한 나의 기대가 어디까지인지 어느 정도 윤곽을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일의 과정에서 기쁨과 두려움의 요소가 어디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가 나를 맞이하는지도 조금은 예측하게 된 것 같다. 어쩌면 그 기대의 한계가, 윤곽이 나를 조금 맥 빠지게 하고, 이 일이 하고 싶은 거냐고 스스로 묻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정해진 프로세스를 따른다 해도 세부는 늘 다르게 변주된다. 작품마다 일을 하는 환경도 방식도 다르다. 사람도 이야기도 다르다. 오히려 음악이 영화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반경과 그 효과에 대해 어떤 이유로 욕망하기를 멈춰버린 건 아닐까. 그것이 나를 맥 빠지게 하는 건 아니었을까.

구체적인 작품 안에서 소리와 음악으로 영화를 상상하며 실현하는 일만큼, 영화음악 그리고 음악가의 자리에 대해 상상하고 실현하는 일은 이제 비등할 정도로 내게 중요해졌음을 시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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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에 대해 단 하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 대신 비유를 써서 이 일에 대해 내가 가진 상상을 다시금 그려보고 싶다.

첫 번째로 영화가 전달하려는 감각을 들리는 톤으로 메이킹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영화를 통해 전달되는 스토리텔링, 이미지, 감각들을 가청의 들리는 소리(대사, 엠비언스, 음악, 사운드 디자인)와 침묵으로 조합된 어떤 톤을 만드는 것. 감정을 확실히 드리내고 건드리는 것, 섬세하게 스토리텔링을 조정하는 것도 음악에 기대될 수 있는 점인데, 지금까지 나는 음악과 사운드의 경계를 오가는 톤과 형상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일반적인 '영화음악'의 역할과 기능을 조금 다르게 보려고 해 왔던 것 같다.

두 번째로 나는 영화음악이, 특히 다큐멘터리나 에세이 스타일의 영화에서는 그림자 만들기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림에 그림자를, 음영을 더하는 것은 대상을 입체로 보이게끔 만드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이미지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착시’ 효과를 내며, 마치 보컬 더블링처럼 요소들 사이의 관계성을 만들어서 보다 복합적인 생성물로써의 영화를 만든다. (어쩌면 관계는 그림자와 같은 것, 그림자는 관계와 같은 것일지도.)

여기서 대상과 그림자 간의 관계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실험할 부분들이 여럿 있다. 전체적으로 대상과 같은 모양과 방향을 가지고 움직일 수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편집본과 영화연출에 대한 이해에 근간한다. 그 관계가 일시적으로 역전되어 영화적 긴장을 발생시킬 수도 있을 터인데, 그 관계성의 상상과 실현은 비단 영화 내부로 국한되지 않을 수 있기에 결국 조정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림자를 통해 영화가 전달하려는 바가 영화 안에서 더 잘 울리게끔 어떤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 그런데 울린다는 것은 무언가에 부딪혀 흩어진다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더 퍼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메시지의 전달이 감각적 형식들 안에서 스며들고 리듬감을 가지고 조정되는 것도 영화에서 들리는 것에 신경 쓰는 이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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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 부산영화제에서 진행하는 ACFM(아시아 콘텐츠 필름 마켓)에 얼마 전 참가 신청을 내고 마켓패스인 배지를 구매했다. 교통과 숙박까지 더하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에 몇 주 망설였다. 마지막으로 부산영화제를 갔던 게 영화 제작사를 다니던 2006-7년이고 그 이후로는, 음악을 매개로 영화와 다시 접촉하게 된 이후로도, 가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갈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관객으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마다 여력이 되지 않았거나 나도 잘 모르는 이유들로 발길을 옮기게 되지 않았다. 사실 마켓 신청을 하면서도 내가 왜 여기에 가려는지 살피느라 몇 주의 시간을 보냈다. 한편으로는 음악감독, 사운드디자이너로 일자리를 찾고,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에 영화들은 어떻게 상상되고 실현되는지, 그 안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보고 싶다’는 모호한 구름이 커졌음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물론 영화제 마켓에 가는 것이 영화음악가가 적극적으로 일을 도모하는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아니라 해도, 그 모호한 구름이 어떻게 커지고 사라지는지 지켜보고 싶다. 느닷없이 내리기 시작하는 빗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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