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세포폐암 4기, 수술 불가, 20대 진단, 흡연 X, 미혼 여성
일을 시작하면서 늘 피곤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몸은 천근만근이 되었고, 감기라도 걸리는 날에는 축 쳐지는 기분에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왜 이것도 못 참아?”
“이 정도도 안 되는데, 뭘 하겠다는 거지?”
그런 날이면 나는 내 몸을 미워했다. 아픈 몸은 나를 가두는 족쇄 같았고, 나는 그 족쇄를 끊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나를 원망하고 자책하면서 지쳐만 갔다.
얼마 전, ‘서브스턴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은 자기의 대체품을 만들어, 늙고 아픈 자신이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대신하게 한다. 결말은 파국이었다. 복제품과 균형을 맞추기 못했기 때문이다.
“우린 하나다.”라는 대사가 오래도록 내 뇌리에 남았다.
그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
병든 나도 나이고, 욕망으로 가득 찬 나도 결국 나라는 사실을.
나는 반드시 나아서 무엇인가를 해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또한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폐암 4기를 진단받기 전 나는 참 욕심도 많고 꿈도 많았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늘 더, 더를 외쳤다.
그러나 아프고 난 뒤의 나는 그 모든 욕망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약한 내가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픈 나를 실패작”이라고 여겼다.
무언가를 할 수 없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증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병으로 인해 내가 잃은 것이 분명 있지만, 동시에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는 나를 미워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한다.
그렇게라도 버티며 살아내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회복이란 “완벽한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나”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병든 나도, 욕망하는 나도 결국 나다.
나를 둘을 갈라놓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