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안녕.
우리 아이들이 요즘 찜질방을 참 좋아해. 사실 우리 부부도 좋아하는데, 아이들까지 즐거워하니 괜히 더 반갑더라. 얼마 전 동네에 새로 생긴 찜질방에 다녀왔어. 아주 뜨거운 사우나는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기 어려웠지만, 적당히 따뜻한 게르마늄방이나 소금방은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았어.
그런데 솔직히 아이들이 찜질방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아. 계란, 식혜, 그리고 놀이방. 찜질 자체보다도 이런 것들 때문에 더 좋아하는 듯해. 그래도 추운 날, 따뜻한 찜질방에서 반팔, 반바지를 입고 시원하게 쉬는 그 편안함을 아이들도 알고 있는 게 신기하고, 또 귀엽더라. 다 놀고 나면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고 나오게 되잖아. 그때마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나. 특히나 이제 내가 딸아이 손을 잡고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는 입장이 되었다는 게. 참,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어.
어릴 적 엄마는 목욕탕 정기권을 끊고 다녔지. 늘 새벽같이 일어나서 목욕하고 하루를 시작했어.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엄마에게는 그 시간이 아니면 목욕탕에 갈 틈이 없었겠다는 걸 이제야 알겠더라. 나도 요즘 아이들 키우면서, 남들 자는 새벽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하잖아. 엄마에게도 그 새벽이야말로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었구나, 하고 생각했어.
주말이면 언니와 나를 데리고 갔는데, 언니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지 결국 엄마와 나 둘이 다녔던 기억이 훨씬 선명해. 목욕탕에서 샤워를 마친 후, 엄마는 늘 한증막에 들어가 한참 땀을 빼고 나왔지. 나는 용기 내서 따라 들어갔지만 엄마처럼 오래 버티지는 못했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머무르는 시간이 늘긴 했지만 말이야. 그리고 사우나를 마치고 나와 냉탕에서 찬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는 곳에 서 있는 엄마를, 나는 탕 밖에서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지.
엄마가 사우나를 하는 동안 나는 온탕에서 놀곤 했어. 시골 작은 목욕탕 온탕 안에서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그 풍경이 아직도 떠올라. 그때는 그렇게 좋아했던 목욕탕을, 크고 나서는 거의 가지 않게 되었더라. 찜질방에서 씻기 위해 들르는 목욕탕 말고는 말이야.
가끔 집에서 샤워할 때 물을 뜨겁게 틀고 시원함을 느끼면, 엄마가 왜 그렇게 뜨겁게 사우나를 하고 뜨거운 물로 씻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당시 열악했던 집안 사정 속에서, 목욕탕은 엄마가 추위를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겠구나. 그리고 어쩌면 출산 후 산후조리를 충분히 하지 못해 몸이 더 찬 데서 비롯된 습관이었을 수도 있고.
목욕을 마친 뒤에 요구르트를 사주던 것도 떠올라. 가끔은 바나나우유도. 그게 참 작은 즐거움이었어. 첫째가 다섯 살이었을 때 장수탕 선녀님 이라는 뮤지컬을 봤는데, 마지막에 요구르트를 사주는 장면이 나와서 더 공감됐어. 우리만의 추억이 아니었구나 싶더라.
이제 목욕탕은 내게 엄마를 떠올리는 장소가 됐어. 딸아이에게 목욕탕의 기억을 남겨주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찜질방의 기억은 줄 수 있을 것 같아. 나중에 딸이 크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일 테지만, 엄마를 떠올리는 나처럼 딸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를 기억해주겠지.
내게 요구르트가 한 장면으로 남아 있듯, 딸에게는 식혜가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해주는 작은 기억이 되어줄거라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