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안녕. 엄마에게 보내는 4번째 편지네. 오늘 아이들 실내복을 꺼내보니 다 작아졌더라고. 그래서 또 한 치수 큰 실내복을 주문하다가 엄마가 생각이 났어.
그땐 온라인에서 주문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무조건 오프라인 매장에서 실내복을 사야 했잖아. 그래서 엄마가 가자고 하길래 쫄래쫄래 따라나섰지. 매장 앞에 도착했는데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각이 나.
"어머, 다 큰 학생이네. 무슨 애기야. 이렇게 큰 애기가 어디 있어."
"나한테는 애기예요. 영원히 애기."
엄마는 나를 언제나 '우리 애기'라고 불렀잖아. 낮에 그 매장에 방문해서 애기 실내복을 사야겠다고 해서 사이즈를 물었는데 엄마도 가물가물했는지 데리고 다시 오겠다고 한 거지. 그러고선 저녁에 나를 데리고 다시 간 거야. 그런데 사장님은 정말 어린애일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 큰 학생이 오니깐 어이가 없으셨나 봐.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정말 젊었잖아. 일찍부터 결혼을 한 탓이 나랑도 나이차이가 22살 차이밖에 안 났으니까. 그러고 보니 정말 어린 나이에 엄마는 엄마가 되었구나.
사장님이 다 큰 애를 애기라고 부르면 어떡하냐고 핀잔을 줘도 엄마는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민망해하지 않으면서 말했지. 우리 애는 엄마에게는 영원히 애기라고.
나는 엄마에게 참 큰 사랑을 받았다는 걸 엄마가 떠난 지금에서야 알겠어. 엄마에게는 그냥 우리가 전부였고 살아가는 이유였으니까. 엄마의 무한한 사랑 덕에 나는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 안정적인 엄마라는 울타리가 없었다면 나는 수없이 흔들리고 다른 길로 빠졌을지도 몰라.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해줘야겠다고 다짐했어. 사랑 표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최대한 할 수 있을 때마다 하려고 하거든. 모두 엄마에게서 받은 거 그대로 아이들에게 해주고 있는 거야. 이런 게 내리사랑인가 봐.
대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가서 한 번씩 주말에 집에 가게 되면 엄마는 집에서 가만히 기다리지 못하고 터미널까지 나를 데리러 나왔잖아. 나를 발견하고서는 그 자리에서 두 팔을 흔들고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지. 오히려 나는 차분하고 무덤덤하게 엄마에게 왜 그러냐고 했지. 그렇게 좋냐고. 그럼 엄마는 0.1초 만에 대답하잖아.
"당연하지! 우리 애기 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걸! 너무 보고 싶었어 우리 애기"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믿고 확신할 수 있다는 데에서 나는 참 행복한 아이였다는 생각이 들어. 무섭고 엄격한 아빠 밑에서 엇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다 엄마 덕분이야. 화목했던 기억 보다도 아빠에게 혼나고 무서워서 울었던 기억이 더 크게 남아있는 와중에도 엄마 덕에 행복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야.
사랑한다고 더 많이 표현 못해서 아쉽고 미안해. 나도 엄마만큼이나 엄마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마음에 비하면 내 마음은 너무나 작았겠지. 아이들에게도 남들에게도 수없이 내뱉는 엄마라는 단어지만 엄마를 불러 볼 때면 또 마음이 아려와.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오지만 그래도 엄마를 회상하는 이 시간이 나에겐 또 소중해.
엄마, 사랑해.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