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쓰러지셨다. 고양이 밥을 주러 뒤뜰에 가셨다가 쓰러지셨고, 뇌경색으로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더 이상의 치료는 가망이 없다고 하여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에게 할머니는 외할머니 한 분만 계셨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두 분씩 있는 친구들을 통해서야 원래는 두 분씩 계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일을 하는 부모님 아래 자라다 보니 방학 땐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기도 했고, 엄마와 멀지 않은 곳에 사셨기 때문에 왕래가 잦았다. 할머니는 본인의 다른 자녀들보다도 우리 엄마와 사이가 각별했고, 자연스럽게 나도 할머니와 허물없이 친하게 지냈다. 이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엔,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고 그렇게 함께 엄마를 추억해 왔었다.
소식을 접하고 주말이 되자마자 먼 길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갔다. 왕복 10시간의 거리였지만 나는 무조건 할머니를 보러 가야 했다. 가는 길에 여러 차례 울컥함이 밀려와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고 운전에 집중을 했다.
도착한 후 코로나 키트 검사를 끝내고 간호사의 안내의 따라 병실로 이동했다. 햇빛이 내리쬐어 블라인드가 살짝 쳐져있었고 그 창가 자리에 나의 할머니가 누워 계셨다.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것처럼.
누워 계시는 할머니를 마주하자마자 눈물은 하염없이 쏟아져내렸다. 한참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어루만졌다. 이상하게도 내가 말하는 걸 들을 수는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 나는 나직이 계속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 나 왔어. 얼른 잘 왔다고, 우리 애들은 잘 크고 있냐고 물어야지. 왜 아무 말 없이 이렇게 누워만 있는 거야. 전화가 올 때가 됐는데, 왜 안 오나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었구나 우리 할머니. 미안해.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정작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그래도 할머니, 나 지금 이렇게 할머니 손도 잡고 얼굴도 쓰다듬고 안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멀어서 내가 자주 오지는 못해도 또 올 거니깐 그때까지 할머니 이렇게 코 자는 것처럼 편히 쉬고 있어. 알겠지? 내가 또 온다고 했으니까 약속 지키는 거야 알겠지?"
할머니는 눈을 뜨진 않으셨지만 자고 계신 듯하면서도 눈은 깜박이는 듯했다. 그게 뭔가 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하품도 하셨고 코도 살짝 골았는데 정말 곤히 잠을 자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누워계신 할머니를 마주하니 어쩔 수 없이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를 떠나보낸 후 나는 습관 하나가 생겼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 매일의 일상에서 문득 지금 보는 이 모습이 마지막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 그러면서 더 오래 눈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날 쓰러지시고 그렇게 우리를 떠나셨다면 이렇게 할머니를 만날 수 없었겠지. 비록 눈 한번 마주치지 못하고 이야기 한마디 나누지는 못했지만 따뜻한 온기가 있는 우리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했다. 이렇게라도 할머니가 오래도록 곁에 살아 계시면 좋겠다. 물론 할머니가 힘들지 않은 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