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어린이날 연휴 중 유일하게 비가 오지 않는 화창한 날이었다.
동네 공원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문자를 확인했는데...
119 신고 접수라고??
아빠는 몇 년 전 많이 아프셨었고 그때 119 신고를 몇 번 하면서 내가 보호자로 등록되어 아빠가 접수하면 나에게 문자로 알림이 온다. 현재는 건강을 많이 회복하셔서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해 오셨고 한동안 119에서 문자 올 일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라며 너무 놀라 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아빠! 어디 아파? 무슨 일이야? 어디야?"
전화를 받으셨지만 이미 목소리가 너무 좋지 않았고 나도 다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이것저것 물어댔다.
"배가 아파. 배가 너무 아파. 으으"
더 이상 통화를 힘들어하셔서 근처에 사시는 큰아버지께 연락을 드렸다. 큰아버지가 방문했을 때 마침 119 구급대원이 와서 같이 병원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병원에 가면 전화를 달라고 말하고 아이들과 집으로 들어왔다.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전화가 오지 않고, 먼저 해볼까 고민하다가 병원에서 정신이 없으시거나 아님 생각보다 금방 호전이 되어 상황이 수습된 후 전화를 주시려는 걸까 생각했다.
얼마뒤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처음 간 병원에서 장을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며 받아주지 않아서 다른 병원을 찾아 이동하느라 조금 더 늦어졌고, 다른 병원에 도착해서 CT 촬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빠의 상태는 어떤지, 많이 아파하는지를 물었는데 계속 많이 아파하고 엄청 힘들어하신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정신이 혼미해졌다.
일단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 주섬 주섬 짐을 챙겼다.
그러는 동안 큰아버지에게, 언니에게 연락이 계속 왔다.
CT 촬영을 했는데 장이 괴사 상태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는 큰아버지의 말.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다시 한번 물었다.
원래 병원에서 환자에게 고지하는 그런 최악의 상태에 대해 미리 말해주는 건지 아니면 현재 아빠의 상태가 정말 많이 심각한 것인지.
큰아버지는 참담한 마음을 담아 심각하다고 했다.
아찔했다.
혼자 운전해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남편이 같이 가자고 했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시어머님을 모셔오겠다고 한다. 나는 상황판단이 빠르게 되지 않았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하겠다는 남편에게 알겠다고만 했다.
다시 한번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의사에게서 전화를 받았고 생명에 지장이 있는 상태로 위급한 상태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시라는.
큰아버지에게 또 전화가 왔다.
의사가 아빠가 말이라도 할 수 있을 때 딸들과 통화를 시켜주라고 했다며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단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울면서 내가 한 말은"아빠 사랑해, 내가 금방 갈 테니 내가 갈 때까지 제발 기다려줘"였다.
시어머님이 오시자마자 둘째를 맡겨두고 바로 출발했다.
평소 같았으면 병원에 입원을 할 거라고 예상이 되었을 테고, 그랬다면 입원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챙겨 갔을 것이다. 이번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라는 의사의 말에 내려가서 어떤 짐을 챙겨가야 할지도 몰라 거의 맨몸으로 간 것 같다.
내려가는 길에도 마음이 초조했다.
의사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려고 이송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는 중인데 이송 중에도 잘못될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계속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드디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이 가능해 이동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고, 도착해서 수속 중이라는 말까지 들었을 때야 조금은 안도를 했던 것 같다.
언니가 먼저 도착했고 내가 얼마 안 되어 도착.
그런데 아빠가 의식도 있고 말도 하시고 생각보다 많이 호전이 된 상황이라고 했다! 세상에. 얼마나 다행인지. 언니와 교대해서 얼른 직접 아빠를 만나러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인사도 나누고 의사도 만나 상황 설명도 들었다.
그렇게 아빠는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일반 병실로 옮겨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배가 찢어질 듯이 아프셨고 본인도 너무 아파서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도 하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다시 통증도 가라앉고 해서 살 것 같다고. 우리 가족이 놀란 만큼 아빠 스스로도 엄청 힘들고 두려운 시간이었구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전 병원에서는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그렇게까지 확신을 가지고 연락을 주고 말했었는데 그렇다면 그건 오진이었을까? 도대체 그 의사는 어떻게 판독을 했길래 그런 걸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우리 아빠가 이렇게 다시 좋아지시고 살아계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더 커서 거기에 까지 마음을 쓸 여유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다행인지가 더 중요해서.
살아가면서 한 번도 겪을 일 없는 일일 수 있지만,
그걸 내가 이번에 겪고 보니 정말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지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감사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