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노모의 아들 생각

퍼플-SO-SO한 이야기

by 해 뜰 날

여느 때처럼 딸과 말 다툼을 버리다 딸은 "엄마는 오빠만 좋아하고!" 이런 폭탄 발언을 하였다.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아들도 함께였다면 단추 구멍만한 눈이 바둑알 만하게 커지며 분통을 터트렸을지 모른다. 어떤 전문가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동생을 본다는 것은 남편이 둘째 마누라를 보는 것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라고. 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렸을 때 아들은 나에게 불만이 생기면 동생을 괴롭혔다. 심지어는 '엄마가 그러면 OO에게 이렇게 한다'며 동생을 깔고 뭉갰다. 불과 26개월의 차이. 코흘리개가 동생이 생겼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딱하지만 그때는 나도 어려서 그런 아이를 잘 다독이지 못했다.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들을 낳고도 둘째도 아들을 바랐던 것은 엄마의 아들바라기에 대한 뿌리 깊은 학습 효과였는지, 동성 형제가 키우기 더 좋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서 이런 게 나왔나 싶게 애교가 철철 넘치던 딸은 나를 완전히 무장해제시키며 편견과 오랜 학습 효과를 무력화시켰다. 세월은 간다. 영원히 귀여울 것 같던 딸은 고 3이 되었다. 키우면서 너무 큰 기쁨을 주어 바랄 것이 없지만 너무 꼴 보기 싫을 때는 '저 아이가 그 아이다' 주문을 외운다.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 없다'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맞는 말이다. 단지 키워보니, 잘 따라오고 속 썩이지 않는 자식이 좀 더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서슬 퍼렇던 엄마와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르니 한결 편안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는 웬일인지 급격히 늙어 버리셨다. 새로 바꾼 핸드폰 사용법을 까먹거나 소리 버튼을 잘 못 눌러 통화가 안 되는 일도 생겼다. 처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통상적인 안부전화였다. 통화의 끝은 큰오빠의 이야기로 옮겨졌다. 슬슬 밸이 꼴리어

"엄마는 80 먹은 노인네가 환갑 바라보는 아들 걱정하고 있어? 알아서 하겠지."

나는 큰오빠와 기타(작은 오빠) 등등으로 살았던 등등의 시절이 생각나서 전화를 빨리 마무리하고 끊었다.

큰오빠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우애가 넘치지는 않아도 존경과 존중은 있다. 언젠가 오빠가 꺼내 든 지갑은 낡디 낡은 허름한 지갑이라 그의 삶의 무게가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각자의 삶이 있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하며 무심하게 살아 왔다.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 했던가? 등등의 삶을 하나하나 꺼내어 엄마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엄밀히 따지면 등등보다 기타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장손이라는 존재가 집안의 기둥과도 같았고 통영에 계신 부모님이 무슨 일이 생기면 한달음에 달려가는 것은 항상 큰오빠였다. 아마도 엄마는 그 먼 거리를 자꾸 불러내어 오빠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 엄마에게 오빠는 남다른 자식일 수밖에 없을 터인데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나는 그것이 서로에게 참으로 힘들어 보인다.

엄마는 내일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가 되셨다. 돌아가실 때에는 필요 없는 고쟁이라도 큰아들에게 남겨주고 싶을 것이다. 큰아들을 향해있는 마음을 기타와 등등은 안다. 그 마음이 큰오빠에게는 족쇄와도 같을 것인데 판단력이 흐려진 엄마는 그것을 알고 있나 모르겠다.

똑 부러진 답이 없으니 뿌연 하늘처럼 답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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