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며

퍼플-삶의 SO SO한 이야기

by 해 뜰 날

지난 주말, 고 3인 딸의 실기 전형이 치러졌다. 수학을 곧잘 하여 이과를 보내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으나 밤새도록 그림을 그리는 딸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미대로 방향 전환을 했다. 밥벌이. 꼭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의 행복한 삶을 영위할 만큼의 밥벌이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나는 생각한다. 결국 미대 입시는 오랫동안 이어 온 갈등의 결과물이자, '자식 마음대로 안된다'의 마침표쯤 되겠다.


'미술도구라서 그렇게 무겁진 않아' 라던 딸의 말은 거짓이었다.

'시험 전에 힘 빼지 말고 엄마가 들어다 줄게'라고 받아 든 아이의 가방은 군장의 무게만큼 무거웠다. 아이보다 8cm나 크고 덩치도 좋은 내가 들기에도 버거운 가방을 아이가 매일 들고 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우리나라 교육, 참 답이 없다. 단호박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험장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가는 딸을 들여보내고 학교 앞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카페 앞 은행나무가 고운 노란빛으로 물든 것을 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여 좋다.


5시간. 보던 책도 다 읽고 하던 게임도 몇 판을 했지만 아직도 1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같은 시간을 보내도 시험을 치르는 아이는 일각이 아쉬울 것이다. 수능이 얼마 안 남은 이 시점에서 코로나에 걸리면 정말 낭패이기 때문에 커피도 마음 편하게 마시지 못한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학교, 학원 그 일대가 아수라장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몹시 부담스러웠지만 주인이 내내 출입문을 열어두어 그나마 다행이다. 멍 때리기 몸 비틀기로 1시간을 때우고 슬슬 모여들기 시작한 학부모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본다.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현수막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펄럭인다. 보온력이라고는 제로에 가까운 가죽 재킷을 힘겹게 여미며 시험장 앞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안내판을 들여다보며 지나간다. 극성맞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도 그랬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별스런 학부형으로 보일지 몰라도 아이에게 내 나름의 성의 표시이기 때문에 단순 치맛바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계자인듯한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갔지만 초과된 시간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래 입실이 9시지 시작은 몇 시인지 모르니까 좀 늦게 나올 수 있어'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해도 너무 추워서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그때 어떤 학부형이 다가가 큰소리를 치니 학교 담당자의 답변이 돌아왔다. 큰소리 나는 것을 싫어하지만 시원한 답변을 들으니 어찌나 고맙던지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한데 뒤섞여 혼란스러운 와중에 기특하게도 한눈에 아이를 찾아낸다. 딸아이의 밝은 미소를 보며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쉰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고 나와 늦은 점심을 사 먹고 집에 도착하니 주말 하루가 다 갔다. 둘도 힘든데 셋은 어찌 키울까? 아이가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뭐 이런 사회 정화 표어 같은 말은 하지 말자. 입시를 치르다 보면 분명 생각이 바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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