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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기획자 장PD Jun 10. 2024

충족감과 미시적 동기

다음 달이면 벌써 2024년의 하반기에 들어선다. 그리고 내가 퇴사한지 딱 2년이 되는 시기다. 1년 전 블로그 기록을 훑어보니 작년 이맘때쯤엔 기록이 뜸했다. 퇴사 후 1년이 되는 시기에 나는 정말 조급했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회사라는 시스템, 조직 밖에서도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인지 증명하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고 버티고 버텼다. 조직 밖에서도 나 이만큼이나 성과 냈다고 뭐든 그 실체를 만들려고 애쓰다가 결국 지쳤던 시기다.


그럼 퇴사 후 2년이 된 지금은 어떤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칠 때도 있고, 힘이 날 때도 있고 그냥저냥 잘 살아가고 있는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 확신에 가득차 매일을 자신감 있게 나아갈 수만 있겠는가. 그런 하루하루를 기대한 것은 순진한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자기 확신과 자신감은 자기 의심과 불안이라는 토양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자기 의심과 자기 확신, 불안과 자신감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의 30대는 그렇게 나아가려고 한다.


퇴사 후 1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년 전 그리고 현재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조급함’이 많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매일을 살아가는 나의 기본값은 자기 의심과 자기 확신, 불안과 자신감의 반복이다. 그러니 ‘여유’라는 듣기 좋은 감정도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며, 이러한 나의 감정의 기본값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급함’이 끼어들 틈새가 사라지게 된다. 또한 ‘조급함의 반대말은 여유로움’이라는 언어 체계의 고정관념만 버려도 부질없는 감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변화의 과정을 겪었기에 1년 사이에 생각이 바뀐 걸까? 나에게 일어난 과정 그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얻는 배움은 무엇이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더 현명한 질문이다.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 일어난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통해 무엇을 깨닫고 실천했는가’로 판가름하는 거니까. 그래서 오늘은 지난 과정을 통해 깨닫고 배운 것들은 무엇인지 나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한다.




1. 충족감을 주는 미시적 동기 속에서 선명한 장점이 제 발로 걸어 나온다.

요즘 토드 로즈의 <다크호스>라는 책을 읽고 있다. 내가 퇴사 후 2년 동안 알게 된 선명한 나의 장점들과 천직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좀 더 명확하게 언어화할 수 있었는데 그 핵심적인 단어가 ‘충족감’과 ‘미시적 동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장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거나, 내가 느끼기에 애매한 답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그 장점으로 회사 밖에서 어떤 일을 해나갈 수 있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애매한 답) 2년 전의 내가 이러한 부류에 속했다. 함께 일해왔던 동료들이 나의 장점들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그 장점으로 앞으로 내가 뭘 해나갈지는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굉장히 애매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는 내가 느끼기에도 아주 선명한 장점들을 발견했다. 발견했다기보다 2년 동안 길러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어쨌든 길러왔다는 것도 애초에 무엇을 발견했으니, 기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애매한 상황을 <다크호스>라는 책 속에서 발견한 '충족감'과 '미시적 동기'라는 언어로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나는 충족감을 주는 미시적 동기들을 따라갔다. 물론 여기서 충족감과 미시적 동기들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2년 전에 소정님이 이끄는 뉴러너클럽 활동을 하면서 나도 그녀를 따라 매일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일기를 쓰는 행위가 나에게 아주 사소한 충족감을 안겨줬다. 그 충족감 덕분에 결국은 2년 동안 매일 일기를 쓰게 되었으며, 이 행동은 더욱더 발전하여 매주 일요일마다 블로그에 장문의 생각 글을 꾸준히 발행할 수 있는 문장력과 필력 그리고 습관을 기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이 습관은 현재 나의 생계를 유지시켜 주는 일에 접목되고 있다.


또한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일단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산책이라는 행위는 일상에서 아주 사소한 충족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는 더욱더 발전하여 매일 6km씩 꾸준하게 러닝을 하게 되었으며, 매월 평균 100km 이상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습관은 안정적이지 않은 회사 밖에서의 삶을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게 하는 인내력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까 이 사소한 충족감은 오늘 한 일을 다음 날에도 할 수 있게 해주는 반복 행동의 원동력인 셈이다. 이는 충족감을 안겨주는 미시적 동기들을 절대 지나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애매한 장점은 감정을 통해 느끼고, 생각할 순 있어도 선명한 장점은 반복 행동을 통해 반드시 발견하고 길러낼 수 있다. 즉, 자신에게 충족감을 안겨주는 미시적 동기를 통해 무언가를 계속해서 실행해나간다면 그 안에서 반드시 장점이 선명해진다. 스스로 장점이 선명하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장점을 찾기 전에 미시적 동기들을 찾아 나서자. 미시적 동기를 통해 무언가를 반복하고, 행동해야 그제야 활용 가능한 구체적인 장점이 스스로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2. 그래서 선택의 기준은 충족감이다.

선택은 늘 어렵다. 선택의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흔히 ‘선택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이 문장 또한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무엇을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말인가? 인간은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데 어떤 생각과 감정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말일까?


위에서 나는 2년간 ‘충족감을 주는 미시적 동기들을 따랐다’고 표현했다. 딱히 내가 뭘 해야 한다는 큰 명제나 미션이 없는 경우라면 미시적 동기를 믿고 따라가 보면 된다. 충족감은 오늘 한 일을 내일도 할 수 있는 반복 행동의 원동력이 된다고 했으니 ‘일단 뭐든 계속할 수 있는 것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일단 뭐든 계속하는 반복 행동 속에서 구체적인 장점이 걸어 나온다고 했으니, 제 발로 걸어 나온 장점을 통해 앞으로 뭘 해가고 싶은지 선택지를 스스로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충족감과 충동감은 구분되어야 한다. 충동과 충족은 겉보기에 매우 비슷하게 생겨서 가끔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러나 충동은 지속성과 단짝이 아니다. 지속성과 단짝을 이루는 것은 충족감이다. 반복하며 축적되지 않는 것이 충동감이라면 그 반대가 충족감이다. 그러니 모호한 상황 속에서 선택의 기준은 ‘충족감’이 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충족감은 대단한 감정이 아니다.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아주 작고 사소한 미세한 충족감이어도 무방하다. 미세한 충족들이 반복되어야 구체적인 장점들이 축적되어 흘러넘친다.




3. 즉, 건너뛰지 말고 건너가야 한다.

독립된 인간으로 스스로 나아가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주어진 환경, 시스템, 나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조직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이 모든 것을 내가 직접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피곤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아닌지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이다. 어떤 가치관이건 각자의 본성에 따른 선택이니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어찌 됐든 나의 본성은 누군가의 시스템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절대 아님은 확실하다.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매우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물론 그 반대의 삶도 에너지가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10년간 회사를 다녀본 경험이 있기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회사를 다녔지만 절대 수동적으로 일하지 않았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하나에만 몰빵(?)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회사를 다닐 때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밖에 나와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며 일하는 데는 최소 2배 이상의 에너지가 들어간다. ‘20대의 젊음’이라는 에너지 화수분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단과 건전한 루틴이 없다면 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온다.


자신만의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며, 충족감을 느끼는 미시적 동기를 따라 매일을 반복하는 것. 이러한 반복을 통해서만 결국은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거시적 동기가 완성된다. 그러니까 일과 인생을 아우르는 미션, 사명, 비전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쉬운 길로 건너 뛸 수 없다. 어떤 길이 됐든 간에 반드시 건너가야 한다. 건너가는 과정 자체만이 거시적 동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4.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란?

1년 전의 나는 독립된 인간으로서 스스로 증명하고자 애썼지만, 이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쓸데없는 것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뭐 하러 증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는 것은 그건 내가 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도 잘하고 있다고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증명에 불과하다.


이제는 오직 나에게 충족감을 주는 행위들을 찾아가는 것, 그것에만 집중하고자 한다. 그래서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그에 따른 상태도 바뀔 수 있다. 좋은 선택이란 자신의 충족감을 따르는 선택이다. 충족감을 따르는 선택이 때로는 남들 눈에는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이더라도 자신에게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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