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넷플릭스를 포함하여 OTT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영상 보는 시간에 책 읽는 게 훨씬 더 좋아서 굳이 구독료를 지불하고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아이디어와 콘텐츠 관련 소스를 얻어야 하는 일이 생겨서 넷플릭스를 한 달 구독하기로 했다. 요금제를 살펴보니 제일 저렴한 구독료가 5,500원이었고, 광고가 포함되어 있지만 어차피 내가 구독하는 목적 자체가 영상을 보며 쉬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아이디어와 기획에 필요한 소스를 얻는 것이라 중간 광고가 있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 4년 전쯤에 회사에서 리더십 교육을 위해 넷플릭스에 있는 지정된 콘텐츠를 각자 보고 와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한 달 무료로 구독한 이후로는 넷플릭스를 다시 사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차피 한 달 결제한 거 필요했던 콘텐츠 외에도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고, 기획하는 데 도움을 받고자 알차게 사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보게 된 콘텐츠가 최근에 공개된 <더 인플루언서>였다. 웬만한 연예인만큼 유명한 다양한 영역의 인플루언서 77인을 한곳에 모아두고, 최후의 1인을 뽑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이다.
영상을 보기 전 프로그램에 대한 후기를 찾아보니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사람을 물건 대하듯이 가격을 매기는 듯한 방식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반응과 다양한 영역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인 만큼 그들의 끼와 기획력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는 반응 등 유명해질수록 관심과 구설이 함께 따라다니듯 극명한 반응 또한 이 프로그램이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냈다는 방증일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러한 극명한 후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일단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시간을 때우고, 오락을 목적으로 영상을 즐기는 거라면 보통 후기가 별로일 땐 아예 보질 않는데 아이디어를 얻거나 인사이트를 필요로 할 때는 욕을 많이 먹거나,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는 콘텐츠를 보는 것이 꽤 많은 도움이 된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간을 때우는 목적으로 보는 거면 추천하지 않지만 기획, 마케팅, 콘텐츠 제작 등 생산자의 입장 즉,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생각력’을 요구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을 가볍게 볼 것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이 프로그램의 재미와 완성도(후반부로 갈수록 재미와 완성도가 정말 떨어진다)를 떠나 영상을 보는 내내 요즘과 같이 콘텐츠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크리에이터(뭐가 됐든 생산자의 입장에서)가 지녀야 할 역량과 자질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생각의 지점을 제공했던 인플루언서를 꼽으라면 진용진, 장근석, 이사배 3인이었다. 미션을 수행하는 이들의 콘텐츠 전략을 통해 크리에이터의 역량과 자질에 대해 얻은 인사이트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관심의 본질은 미움받을 용기가 아닐까?
대부분의 참가자가 '좋아요'를 받고자 애쓰며 노력할 때, '관심'의 본질을 파악한 진용진은 '싫어요'를 받기 위한 액션을 취한다. 관심이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꼭 좋은 것에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아니다.
해당 미션에서 탈락한 어떤 한 참가자는 셀프 인터뷰에서 이런 식의 말을 남겼다. ‘싫어요를 받기 싫어서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은 사람들 보다 뭐라도 받기 위해 액션을 취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이름과 얼굴이 기억난다’
국민 MC 유재석은 악플보다 무관심이 낫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 말도 관심받아본 자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선플이던 악플이던 관심을 받고자 하는 행동에 대한 리액션이 있어야 다음 액션을 준비할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작정하고, 악플을 받기 위한 행동을 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세상에 미움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면 관심을 먹고 사는 인플루언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쁨 받고 싶음’이 아니라 '미움받을 용기'가 아닐까?
2. 적당한 어그로도 능력인 셈이다.
짧은 시간 안에 난다 긴다 하는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선택받을 수 있는 것은 사진의 ‘완성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빠르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어그로’ 능력임을 간파한 장근석은 대충 찍은 사진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텍스트 넣어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전략을 구사한다. 사실 결과물 자체로만 봤을 땐 매우 촌스러운 사진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어그로란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거나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내용을 자극적으로 만들거나 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이 전략을 부정적으로 느끼고 있지만 그럼에도 온라인상에서 어그로 전략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나는 이유는 부정적인 감정과 별개로 이 전략이 여전히 잘 ‘먹히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에서도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보다는 적당히 과장하며 자신의 능력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인정받는다. 사회생활이 미숙했던 어린 날에는 그러한 행동들이 부정적으로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그리고 내가 팀원뿐만 아니라 리더의 역할도 해보니 적당히 자신의 능력을 포장하여 표현할 줄 아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거짓으로 과대 포장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포장하며 표현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포장이란 ‘셀프 기획력’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 일하기도 바쁘다. 묵묵히 일을 하며 자신이 했던 모든 일들을 알아봐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마찬가지로 콘텐츠가 범람하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들 수 있다면 적당한 '어그로'는 능력인 셈이다.
3. 그럼에도 진심으로 쌓아온 것은 단단하다.
대부분 아침 시간에 활동하는 이사배의 팬들은 늦은 밤 시간에 진행된 라이브 방송 미션에서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그녀가 탈락하지 않기 위해 방을 나가지 않고 응원하며 도와준다. 이 모습을 본 이사배는 결국 라이브 방송 중 눈물을 흘린다. 그 덕에 이사배는 탈락하지 않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어떠한 참가자는 이사배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게 본인이 여태까지 쌓은 거지 뭐’
이사배는 참가자들 중에서 그 흔한 ‘어그로’ 전략을 거의 쓰지 않으며 자신의 고유한 콘텐츠와 기획력만으로 미션을 이어나간 유일한 크리에이터였다. 물론 이미 200만 유튜버이자 영향력 있는 8년 차 인플루언서이기에 가능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핵심은 어그로 전략으로 잠깐의 큰 관심을 받을 순 있어도 그 관심이 유지되려면 사람들을 계속 붙잡을 수 있는 고유한 매력뿐만 아니라 진정성으로 쌓은 끈끈한 유대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반짝 스타보다 꾸준히 사랑받는 스타들이 더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그러니 인플루언서에게 '관심'이란 전부가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시작으로 관심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크리에이터로 거듭나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