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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기획자 장PD Aug 26. 2024

도대체 하츄핑이 뭐길래?

최근 어린이 영화 <사랑의 하츄핑>이 손익분기점인 50만 명을 가볍게 돌파하고, 1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관련 굿즈들도 인기를 끌며 부모들 사이에선 파산핑, 등골핑이라는 별칭도 얻을 정도로 돈을 쓸어모으고 있다고 해서 도대체 하츄핑의 매력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하여 집앞에 있는 영화관에 가서 하츄핑을 보고 왔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감동적이다, 어른들을 위한 만화다’라는 일부 평도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냥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맞다. 내 기준에서 ‘어른들을 위한 만화’ 정도가 되려면 ‘인사이드 아웃’ 정도는 되어야 한다. 여기서 ‘인사이드 아웃 정도’라는 기준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어른들에게도 생각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느냐를 말한다. 

사랑의 하츄핑의 경우 세일러문, 웨딩피치, 천사소녀 네티 등 어릴 적 보고 자란 애니메이션들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생각의 변화보다는 옛 추억이 소환되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건 사람마다 어릴 적 경험과 추억의 느낌이 다르기에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을 테지만 오랜만에 말랑말랑한 동심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은 어른이라면 가볍게 봐도 좋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조용히 감상하고 싶어서 평일 낮에 예매했으나 영화가 시작할 즈음에 엄마와 아이가 한 팀을 이룬  2~3그룹이 한 번에 들어왔다. 이 모습을 보자마자 조용히 보는 것은 글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오히려 조용하지 않아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정말 유치하다고 생각되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흥분하고, 놀라고, 즐거워하는 다양한 반응들을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어린이들을 타겟으로 한 영화의 매력을 알아내려면 영화를 혼자서 조용히 볼 것이 아니라, 아예 아이들이 대거 관람하는 시간대에 시끄러운 환경에서 봐야 함’을 크게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년 전 장난감 MD 일을 했을 때도 주말마다 토이저러스에 가서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했던 내가, 아이들을 위한 영화의 매력을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알아내려 했다니..제대로 감을 잃었구나 싶었다.

성인 타겟의 경우, 격식을 차리거나 예의를 지켜야 하거나 또는 밖에서 설정한 자신의 캐릭터를 일관되게 유지시키기 위해 진짜 솔직한 반응과 심리를 알아내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나는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타겟 분석을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조만간 더 상세하게 글을 써보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을 정말 솔직하다. 이러한 솔직한 반응이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에겐 곤욕이 될 수도 있지만 인사이트를 발견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축복이다. 

물론 여기서 비즈니스 모델을 붙이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유일하게 구매자(부모)와 사용자(아이들)가 다른 시장이 유아와 반려동물 시장이기 때문이다. 굉장한 tmi지만 유아MD 출신임에도 와디즈로 이직하여 스스로 유아 제품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이러한 시장의 복잡한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나 주로 신생 브랜드나 창업 경험이 부족한 기업과 거래했기에 이들이 다루기에 꽤나 난이도가 높은 시장이라 인풋 대비 아웃풋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사건사고가 날 확률도 높았기에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겠다고 판단한 부분도 작용했다. 그러니 위에서 표현한 ‘축복’은 언제까지나 가벼운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정도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대놓고 유아를 타겟으로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성인의 시야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당연히 유치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괜찮다고 판단되는 요소를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1. 진화한 K애니메이션의 비주얼

세일러문, 웨딩피치, 천사소녀 네티 등 퀄리티가 높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가 봐도 K애니메이션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생각될 만큼 영화의 영상미와 색감, 캐릭터 표현력 등 화려한 비주얼이 눈길을 끌었다. 물론 냉정하게 말해서 여전히 일본 애니메이션만큼의 높은 퀄리티는 아니다. 그러나 10년 전 하루의 절반을 어린이 캐릭터들을 보며 일해왔던 내 시각에서 이 정도의 캐릭터 표현력과 색감은 정말 큰 발전이다. 일단 시각적인 요소를 사로잡아야 그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하츄핑이 등골핑이 된 것에는 이러한 비주얼적인 요소가 제대로 한몫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하츄핑 너무 귀엽다..



2. 영화는 끝나도 노래는 남는다

유아를 타겟으로 하는 영화인만큼 스토리와 인물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게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를 '노래'로서 잘 활용하였다. 아이들을 사로잡은 역대 애니메이션들은 툭 치면 바로 흥얼거릴 수 있는 주제곡들이 있는 것처럼 이러한 흥행 대표 공식을 의식한 듯 영화 중간중간 지루해질 즈음에 복잡한 관계 설명이나 과정을 생략하고 노래로 대체함으로써 오히려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세일러문, 피구왕 토키, 피카츄.. 아직도 대표 주제곡의 멜로디가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극장 영화로는 겨울왕국의 OST가 가장 흥행한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물론 하츄핑의 노래들은 겨울왕국 정도의 중독성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흥얼거릴 수 있도록 충분히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정성이 느껴졌다. 그런데 나..어느 순간부터 윈터가 부른 하츄핑 OST를 계속 듣고 있다.. 이렇게 핑며드는건가..?



3. 어른들이 봐도 사랑스러운 이야기

기승전결이 확실한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뻔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가장 괜찮았다고 느꼈던 점은 동화 속 왕자와 공주의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로미 공주와 단짝인 하츄핑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이다. 어른의 시선에서 로미 공주가 왜 이렇게 하츄핑에 집착(?) 하는 지는 이해가 되지 않고, 등짝을 때리며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은 정도였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 속에서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전체적인 스토리는 재미와 교훈을 함께 담고 있어서 충분히 잘 만든 어린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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